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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Nov 10. 2017

생애 첫 직장 구하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집 근처 어린이 문화 센터에서 놀잇감 관리 인력을 구한다는 광고를 둘째가 알려줬다.

그래서 난생처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는데 근무 시간에 비해 보수가 적고 격주 토요일 근무가 썩 당기진 않지만 발병 후 사회의 첫걸음으로 집 근처에서 체력 소모가 그래도 덜 심한 곳일 것 같아 되든 안되든 지원해보았다. 


그런데 벌써 마음가짐이 다르다. 출퇴근하던 긴장감이 살짝 느껴져서 개던 빨래를 멈추고 컴퓨터에 다가앉게 되는 이 마음이라니! 

내가 가진 자격증이라고는 중등 1급 정교사 자격증 하나뿐이라 그것만 썼다. 작년에 딴 산후도우미 자격증은 자기소개서에다 자랑해놨다.

그런데 벌써 출근이라도 하게 된 모양으로 정신이 번쩍 나면서 나른하게 늘어졌던 권태로운 육신에 피가 빠르게 도는 것 같다. 


그렇다. 

돈벌이라는 건 이렇게 사람을 곧추 세우는 힘이 있다는 것을 몇 년만에 다시 맛보게 되었다. 

월말마다 위태로운 가계부도 구직을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울과 양평의 두 집에 들어가는 관리비가 많다 보니 아무리 생활비를 아껴도 수입과 지출이 빠듯하게 맞아떨어진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올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하반기에는 공사가 적다며 지금은 돈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내가 언제부터 남편에게 목매고 살았나 싶어서 오기가 솟았다. 


돈을 버는 자가 곧 권력을 쥔 자이니 남편은 은연중에 평생 못해본, 갑질까진 아니어도 슬슬 내게 군림하려 드는 게 느껴지는 건 못난 내 마음이겠지만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좀 답답해지기 시작한 지가 좀 되었다. 

체력도 약간이지만 돌아온 것도 같고 이제는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직장을 얻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가 비웃는다. 

쓸 수 있는 몸이 어디 있는데?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니 지원한 곳에 취직이 되면 즐겁게 다닐 수 있을 텐데 다음 주에 결과가 정해진다. 

돈을 벌러 다니기에는 보수가 형편없지만 집 가까운 곳에 정해진 시간으로 출퇴근하는 기분을 느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곳이다. 

일사천리로 쓴 자기소개서를 읽어 본 아이들은 "엄마! 산후 도우미 자격증을 딴 거야?"하고 묻는다. 

딸들이 혹시라도 내게 산후바라지를 해달랄까 봐서 비밀로 하고 다녔는데 여기서 그만 탄로 나고 말았다. 


남편은 내가 이제 와서 취직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질병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해야 할 즈음에 남편은 자신이 벌 테니까 그만두라고 말해줄 때 이 남자가 태산처럼 고마웠는데 생활비 인상을 안 해주니 그때 고마웠던 마음은 벌써 다 잊어버렸다.


딸들도 이제 졸업하면 각자 살 길을 찾아서 어디로든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고 나도 사회로 돌아가고 싶다. 

첫째는 내게 취직하게 되면 아빠의 아침밥은 차려주지 말라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다잡아 묻지만 정작 내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건 저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진심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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