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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23. 2017

땅콩 농사

낙동강에서 헤엄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은 강가 모래밭에서 자란 땅콩을 삶아먹는 걸 무척 좋아한다. 텃밭이 생기자 남편이 가장 많이 심자고 욕심냈던 작물이 그래서 땅콩이 되었다. 서너 해 농사를 지어보니 실패 끝에 어떻게 해야 땅콩 농사를 잘 짓는지 깨닫게 되었다.


일단 흙이 중요하다. 배수가 잘 되는 모래땅이 땅콩이 가장 좋아하는 흙인데 만약 토질이 알맞지 않다면 마사토를 섞어서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후, 거름을 적당히 뿌려주면 된다.


파종 방법은 모종을 심는 것과 땅콩 알을 직파하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 방법을 같이 해보았더니 직파가 생육이 더 좋았다. 단 물불림을 한 땅콩을 심으면 싹은 잘 나나 계속 수분을 유지해줘야 한다. 물 주기를 잊거나 비가 안 오면 땅콩이 말라버려서 싹이 모조리 나지 않는 실패를 한 적이 있다. 땅콩 알을 물불림 없이 그냥 심으면 천천히 싹이 나온다.


흙이 갈라지면서 땅콩 알이 반으로 쪼개지며 그 사이에 초록색 싹이 나오는 장면은 볼 때마다 가슴이 찌르르하면서 감동이 밀려온다.  


고랑은 높게 하지 않고 넓고 평평하게 해야 한다. 깊이 뿌리내리는 무는 흙을 높이 쌓아 고랑을 만들지만 땅콩은 깊지 않게 맺히기 때문이다. 꽃이 달리면 덮었던 비닐을 걷어내고 관리해야 한다. 안 그러면 비닐 아래에 땅콩이 붙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는 텃밭 농사에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뜨거운 여름 볕에 땅콩 잎이 무성해지면 또 할 일이 있다. 이파리 가운데를 젖힌 후에 흙을 채워줘야 한다. 땅콩 한 알에서 수십 알이 달리기 때문에 많이 퍼질 수 있는 흙이 필요한 까닭이다.  흙이 부족하면 땅콩 알이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고랑의 흙을 북돋워주는 작업도 수시로 해주면 좋다.


예쁜 땅콩 잎이 무성해지면 잡초는 그다지 자라지 않아서 손이 별로 가지 않는 작물이기도 하다. 시월 중순까지 있다가 이파리가 검어지면서 옆으로 시들기 시작하면 수확을 하는데 뽑는 건 간단하지만 일일이 땅콩을 따줘야 하는데 손이 많이 간다.


땅콩을 소쿠리에 담아 야외에서 분사기로 물을 세게 뿌리면 흙이 쉽게 제거되고, 여러 번 씻은 다음  물에 땅콩이 잠길 정도로 부어서 끓기 시작한 후 20분이 되어 불을 끄고 소쿠리에 부면 고소한 땅콩을 먹을 수 있다.


볶은 땅콩보다 삶은 땅콩이 훨씬 맛있고 고소해서 오래 두고 먹으려면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먹을 때 살짝 찌면 되는데 아직까지 남을 만큼 농사를 많이 지어본 적이 없어서 올해 처음으로 시도해보려고 한다.


남편은 밭의 절반이 땅콩이라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없다는 나의 불평에 내년에는 두 고랑만 땅콩을 심고 나머지는 양보하기로 했다. 몇 년 동안 먹은 데다 올해는 혼자서 땅콩을 캐고 씻고 삶아보더니 힘이 들었는지 땅콩에 질린 듯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채소를 심어서 텃밭에만 가도 밥상이 차려지는 시골 살림을 해보고 싶은데 내년부터는 제법 실력 있는 농사꾼이 되고 싶다. 꽃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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