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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11. 2017

남편은 대부분 옳다.

십 대는 다가올 인생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고 이십 대는 혼돈과 불안의 시기였으며 삼사십 대는 결혼 생활과 육아로 허우적대며 살았기에 결론은 오십 대인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물론 이럴 줄 짐작도 못 했다. 나 또한 영원히 젊을 줄 알았고 언제까지나 건강할 줄 알았다.

이제는 저녁이 되면 체력이 고갈되어 누워있다가 결국 잠이 들고 만다.

둘째와 저녁 8시 10분의 영화를 예매해놓고 걱정이 되어 커피를 마시고 출발했지만 결국 모진 잠을 못 이기고 졸다말다하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 쏟고 돌아왔다.

놀러 다니는 것도 활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이젠 뒷방 늙은이처럼 골골대는 체력으로 일상생활만 겨우 해나갈 수 있다.

그런 내게는 시골 생활이 가장 알맞고 겨울인 지금은 할 일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하는 뜨개질 수업을 신청해서 배우고 있다. 간단한 목도리와 모자를 뜨고 나서 수강생들이 대부분 원하는 예쁜 인형을 뜨게 된다.

겨울이 되어 한파가 닥치면 시골집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기에 주말에는 양평에 가서 보일러를 켜두고 집을 둘러보아야 한다.

남편은 눈이 쌓인 시골집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고 나는 집을 환기하고 보일러 실의 기름과 가스를 확인하는 등 바쁘게 집 안팎을 쏘다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과 나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은 우리가 살던 셋집에 새로 이사 온 부부로 화제가 모아졌다.   

남자분이 꽤 활달한 편인지 커피 드시러 오라는  내 말에 바로 과자를 들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는 시골에 와서 살게 된 사연을 술술 풀어놓았다.

다큐 감독인 남자는 작업실 겸 여기서 혼자 지내고 제품 디자인하는 여자는 주말에 온다고 한다.

연상연하 커플에 자녀가 없다고 했는데 예술가가 많이 사는 양평에는 이런 부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살던 옥천면의 펜션 건물은 서향에다 단열이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몹시 추웠는데 여기 셋집은 남향이라서 밝아 좋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시골에 사는 것이 좋아 전세를 구해서 지내고 있다면서도 우리 집이 자신들의 취향과 딱 맞아 예쁘다며 언젠가는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싶다고도 했다.

남자가 나처럼 말이 많고 활달하며 여자는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것이 우리 남편과 비슷해 보였다.

시골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만들기에 처음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도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농사지은 땅콩을 마지막이라며 쪄서 내놓고 커피는 남편이 캡슐머신으로 내려서 대접했다.  

나이가 적어서 아직 풋풋해(?) 보이는 남자과 사는 여자를 보니 부럽기도 하고 여자의 능력도 출중해 보여서 더욱 부러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활발한 편이 아닌 남편 성격으로 봐서 내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던 것이 의외라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언제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랑 결혼하려고 했어?"

"처음 딱 보는 순간,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확신이 있었지."

선도 서른 번 넘게 본 남편이 자신의 삶에 적당한 여자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쳐놓은 그물에 마침내 걸려들고 만 여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왜 하필 나였어야 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에게도, 형수에게도, 누나에게도 잘 하겠다 싶어서."

그래도 좋다고 결혼한 내가 미친 거지 이제 와서 누굴 탓하랴!!

남편은 치밀하고 꼼꼼하며 신중한 성격답게 고르고 골라서 온순해 보이는 내게 한눈에 반해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다혈질에 급한 성격의 나를 겪어보고는 자기 눈을 찔렀다며 이렇게 거친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징징거린다.

세상의 모든 커플들을 엮어 준 운명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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