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Dec 18. 2017

계단을 조심하세요.

시골집의 다락이 높고 계단의 경사가 가파르기에 손님이 오면 항상 주의시키고 특히 어린아이가 있을 땐 오르내릴 때마다 조심하라고 했다.

그렇게 조심했지만 결국 일 년만에 사고는 터지고 말았다.


지난 토요일, 시누이와 사촌네 결혼식에 갔다가 함께 양평집으로 와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황토방은 북향이라 영하 십 도 이하의 날씨에는 외풍이 심해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시누이에게 안방을 쓰라고 하고 남편과 나는 다락에서 자려고 이불을 준비했다.

겨울에는 통창이 있는 거실보다 다락이 따뜻하다


하지만 경우가 밝기로는 둘째라면 서럽고 체면이 많은 시누이는 나의 권유를 끝내 거절하고 혼자서 다락에 올라가 잔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다가 화장실에 두어 번 가는 시누이의 습관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잠결에 낙상하면 큰일이라고 말렸으나 시누이는 듣지 않고 다락에서 자다가 새벽에 내려오면서 어두운 곳에서 마지막 계단을 보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시누이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는 남편과 나는 화들짝 놀라 문을 열고 나왔다.

가파른 계단이라 중간에서 떨어지면 큰 부상을 입기에 철렁하는 마음으로 뛰쳐나왔더니 시누이는 발을 부여잡고 안방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발등이 시퍼렇게 부어와서 일단 냉찜질을 했는데 일어나서 딛질 못하겠다고 시누이는 엉덩이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일요일이고 시골이라 서둘러 서울로 돌아온다고 와도 이미 오후가 되어서 동네 근처 병원의 응급실에 갔다.


엑스레이 결과 새끼발가락 뼈가 사선으로 으스러지고 조각이 나있어서 수술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남편과 시누이 그리고 나는 동시에 떫은 감을 베어 문 표정으로 낭패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시누이는 자기의 실수로 사고가 나서 미안해 어쩔 줄 몰랐고 우리 부부는 시골집에서 다친 거라 그 또한 미안함에 할 말이 없었다.

시누이는 조심성이 많고 매사 철저한 사람이라 이렇게 어이없이 다치고 나니 스스로 믿어지질 않는지 탄식을 여러 번 하였다.

시누이의 말을 옮기면 "할머니도 아니면서 내가 할머니 같은 짓을 하다니.."였다.

초등학생인 손자부터 넷이나 되는 손자 손녀가 있으면서도 할머니임을 인정하지 않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다.


여동생이 카톡 프로필 사진에 세 살일 때의 외동딸 사진을 올려놨더니 동창 남자애가 아들이냐고 물어서 딸이라고 했다고 한다.

저런 애들이 커서 예뻐진다고 하는 동창에게 여동생은 "예쁘다고 올려놓은 건데?"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자 동창은 "여자는 역시 어려워."라고 대답했다는데 나도 여자이지만 여자 마음은 어렵긴 하다.


이미 배려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예전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시누이는 기어이 고집을 부려 사고를 내고 말았으니 그런 누나를 무척이나 아끼는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속이 상해서 잔뜩 골이 났다.

나더러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남편은 대설주의보가 내린 오늘 다시 누나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료를 보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입원시키고 수술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수술만은 피해보고자 했으나 단순 골절이 아니라서 안되고 집에서는 일상생활이 힘들어 입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골 집의 구조 상 길이가 안 나와서 찜찜했지만 아직 손자가 없다는 이유로 가파른 계단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누이가 이렇게 수술까지 할 정도로 크게 다치고 보니 어찌나 마음이 안 좋은지 하루 종일 심란했다.

생각할수록 집안의 계단은 참으로 위험한 것 같다.

맨발이나 양말을 신은 미끄러운 상태로 오르내리기 때문에 방심하는 순간에는 다치기 쉽고 경사가 가파르면 그 위험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골집은 되도록 단층으로 하는 것이 좋고 요즘같이 추운 계절엔 정말 작은 집이 관리하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수술한 해에 시누이가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병원이 우리 집과 가까운 곳이라 아침마다 국을 끓여 갖다 날랐다.

지금은 그렇게 할 정열도 체력도 없는 걸 보니 나도 다 되긴 한 모양이다.

시누이도 하루빨리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예전에 그 왕성하던 기억을 잊어주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은 대부분 옳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