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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an 02. 2018

시골 생활에 꼭 필요한 이웃관계

전원생활을 하는 일곱 집과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모임에 정식으로 가입할 건지 묻는 이웃들의 질문에 남편의 의견을 떠보았더니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 남편이 의외로 흔쾌히 들겠다고 했다. 간간이 이웃들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기도 했기에 이번에는 우리가 처음으로 이웃들을 대접할 차례가 되어 동네 근처의 식당을 수소문해서 지난 토요일 저녁 식사를 14인분으로 예약했다. 더덕구이와 도토리 정식으로 주문했는데 식당 주인이 공깃밥 대신 가마솥밥으로 해주겠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다.


용문사 가는 길에 있는 식당은 일찍 손님이 끊기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이라도 손님은 우리 일행뿐이라서 조용한 가운데 맛있는 밥과 더덕구이, 도토리무침, 제육볶음 등으로 즐겁게 식사를 했다. 다음 일정은 지난가을에 집을 지어 이사한 이웃집이 가장 넓어서 그곳에서 간단한 안주와 후식으로 뒤풀이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각자 가져온 과일과 후식을 펼쳐놓고 집주인은 비싼 양주를 따는 등 흥겨운 분위기로 남자들은 거실에서 여자들은 주방 식탁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나는 동행 카페에서 공동 구매한 제주도 성전 귤(진짜 맛있다!)과 옆 농장의 어르신이 주신 은행을 일일이 까와서 이웃집 주방에서 바로 볶았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라서 그런 건지 주방에서는 이웃 두 분이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을 털어놓는 바람에 잠깐 분위기가 어색하기도 했으나 다른 이웃들의 도움으로 애써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식당에서 나올 때쯤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점점 진눈깨비로 변해서 다들 일어서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으려니까 그제야 집주인이 미리 준비했다던 노래방 화면을 켜고 마이크를 점검했다. 노래 한 곡씩 안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마이크 성능이 몹시 열악했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애창곡을 불렀다.


우리 남편으로 말하자면 자타가 공인하는 '트로트의 황태자'이므로 '거짓말'(당연히 버즈의 거짓말이 아니다!)을 시작으로 두서너 곡을 열창하니 예상한 대로 이웃들은 '카수'가 나왔다며 박수갈채와 함께 잔뜩 치켜주었다. 나는 속으로 '집에 가면 자신이 얼마나 잘 불렀는지 또 몇 번이나 물어보겠군.'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만 있었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나는 남편이 트로트를 감칠맛나게 잘 부르면 부를수록 소름 끼치게 싫은 사람이다.


눈이 내리는 창 밖을 보며 무척 낭만적인 밤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오는 길에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남편은 마이크가 엉망이었지만 자신의 노래가 어땠냐고 물어서 나는 오직 침묵을 지키며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별로 활동적인 성격이 아닌 남편이 어쩐 일로 모임에 가입하겠다고 해서 뜻밖이었는데 이렇게 즐거워하는 걸 보니 그동안 조용한 시골 생활이 남편으로서도 꽤 심심했던가 보다. 나는 시골집에 카페 회원들이 자주 오니까 굳이 번거로운 모임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남편을 생각해서 가입을 잘 한 것 같다.


우리 집 앞에는 필지 4곳을 합하여 지은 대저택이 있다. 서울에서 사업을 크게 성공한 분이 은퇴해서 지은 집이라는데 정원의 규모가 엄청나서 따로 업체에게 관리를 맡긴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지나고 지난여름에 도로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 들었다. 주말에는 차가 와있는 걸 보니 집을 팔진 않았고 그 큰 집이 팔릴 지도 의문이었다. 평소에 늘 대문이 닫혀 있고 자녀들이 오는 주말에만 열려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과는 물론 이웃과도 교류를 전혀 하지 않는 집이었다. 시골 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생활의 불편과 고적한 일상을 견디기 쉽지 않기에 대부분 몇 년 지나고 나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걸 그동안 많이 봐왔다.


남편은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주말에는 시골에서 놀기만 하면 되므로 금요일만 되면 먼저 양평으로 가자고 서둔다.이웃들과 식사를 하고 집 이야기나 농사 이야기 등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인데 나를 위해 지었다는 집이 어째 남편이 더 즐거워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집을 짓고 나니 돈은 하나도 없어서 올해 목표가 난생처음으로 돈도 좀 많았으면 하는 것이 되었지만 이렇게 즐거워하는 남편과 함께 시골 생활을 하니 생각할수록 참 잘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남편이 트로트만 부른다고 항상 불만이었는데 얼마 전에 나와 동갑인 양평의 또다른 이웃들과 노래방에 가서 크게 깨달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도 트로트를 잘 부른다는 점이다. 동갑내기들은 이선희의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김추자의 무인도를 춤과 함께 신명 나게 부르는 걸 비교하니 비로소 나도 언제부턴가 구성진 노래만 잘 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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