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Feb 12. 2018

시골 마을의 민폐 부부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다. 어쩌다 보니 남편과 내가 시골 마을의 민폐 부부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나는 사실 억울한 면이 많다. 왜냐하면 남편이 주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기 때문인데 시골 생활에는 남자의 근력이 필요한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집을 지으면서 주차장 입구에 있던 주목 세 그루를 마당으로 옮겨 심었는데 그중 한 그루가 누렇게 말라갔다. 침엽수는 한번 시들면 회생이 안된다고 하더니 물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결국 뽑아야 했다. 문제는 누가 뽑느냐인데 산새 공방의 손 선생님이 나무 모양이 예쁘다고 달라고 하셨다. 드리고는 싶으나 제법 자란 나무를 뿌리째 뽑기란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서 차일피일하는 동안 이웃 부부가 놀러 오게 되었다. 부인보다 나이가 적은 남편은 젊고 특전사 출신이라 힘이 장사였다. 나무 얘기가 나오자 그 집 남편이 마당으로 가더니 삽으로 나무 주변을 파고 임꺽정 같은 괴력으로 나무를 뽑아냈다. 사람 키만 한 나무를 둘러메고 트럭까지 운반하고는 어깨 숨을 쉬니까 그 부인은 두고두고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힘쓸 일 있으면 미리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자기 부부는 그 날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우리 남편은 허우대가 멀쩡하고 키도 크다. 하지만 약골이라서 일을 보면 슬슬 피하고 꼼꼼한 성격답게 대충 하지 못하므로 어지간해서는 덤벼들지 않기 때문에 남편에게 일을 시키려면 벼르고 벼르다 내가 도와줘야 마지못해 하곤 한다. 다른 집 남편들은 일을 보면 시키나 안 시키나 뚝딱뚝딱 잘도 하더니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남편은 내 속을 터지게 한다. 무거운 걸 옮긴다든지 완력이 필요한 일은 그래서 이웃이 오면 같이 하는 일이 잦다 보니 우리 부부는 어느새 '민폐 부부'로 등극하고 만 것이다.


나는 또 시골에 혼자 와 있으면 밥을 못 챙겨 먹을까 봐 이웃이 자주 식사 초대를 해주곤 한다. 자주 얻어먹다 보니 이제는 미안해서 시골에 와도 왔다고 알리지 못하게 되는데 멀리서 우리 집에 불이 켜진 걸 보고 먼저 전화로 왔냐고 묻고는 아침을 먹으러 오라고 강압적으로 말해서 또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아침 먹으러 가야 한다. 저녁을 얻어먹을 때도 많아서 이제는 정말 미안해서 '혼자 있고 싶어서 시골에 온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영양가 있는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나면 기운도 나고 집에서와는 달리 많이 먹기도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무척 미안한 일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남편은 동네 언니들에게 인기가 많다. 온순하고 부드러운 남편의 성격을 좋아해 주는 언니들이라 색다른 먹을거리만 있으면 허약한 우리 남편을 주라며 챙겨준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고 싶게끔 만드는 재주가 있으니 그런 남편이 얄밉기 그지없으나 사람은 이래서 살아갈 방법이 다 있는 모양이다. 지난가을의 김장도 이 곳의 이웃들이 모두 도와줘서 많은 양을 담을 수 있었다. 그 이웃들의 집에 가서 내가 도와주지는 않았으니 우리 부부는 '민폐 부부'가 맞는 셈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신세 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질색하는 나였는데 수술 후에 기운이 부쩍 달리고 남편마저 허약하니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자꾸만 늘어난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신세 질 일 있으면 지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게 된다. 우리를 자주 도와주는 그 부부에게는 식사 초대를 가끔 해서 집밥을 해주고 음식 솜씨가 좋은 이웃 언니와는 외식을 함께 하는 식이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골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 사는 재미가 훨씬 더 있으니까 말이다.


올해의 새로운 계획이라면 뒤뜰의 꽃밭을 새로 정비해서 흙도 돋우고 테두리도 만들어서 예쁜 꽃밭을 만들 예정이다. 물론 이웃들의 도움을 듬뿍 받아서 함께 할 것이고 이미 이웃들은 계획을 세우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등 각오를 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위에 민폐를 끼치다 보면 일은 한결 수월한 것은 틀림없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렇게 점점 염치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지난 여름의 호박잎
밭 주변에도 호박을 심었다.
호박을 말려서 창고에 매달아 두었는데 한 줌 밖에 안 된다.


작가의 이전글 시골집은 무조건 단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