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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Feb 04. 2018

시골집은 무조건 단열

이번 용문의 겨울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었다. 남편이 학교의 보수 공사를 맡아 겨울 방학 동안 완공을 해야 해서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했고 이 추위에 나 혼자 양평 집에 가기는 무리여서 가장 추웠던 3주 동안 집을 보살피지 못했다. 황토방과 본체의 보일러를 외출 모드로 작동시켜 놓았고 주방의 수도는 잠가 놓고 왔는데 설마 동파되지는 않았는지 가스가 떨어져서 연료가 다 되진 않았는지 불안한 마음으로 시골집에 가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바빠서 지난 목요일 내가 먼저 양평으로 전철을 타고 출발했다. 동네 이웃 언니들이 마침 점심을 먹기로 했다기에 용문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뒤 그 차에 합류해서 맛있는 한정식을 먹고 카페에서 해가 지도록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못 했던 수다의 한을 마음껏 풀고 나니 울적했던 기분이 풀려갔다. 저녁밥까지 이웃집에서 잘 얻어먹고 휘영청 달빛 밝은 동네길을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낮동안 햇볕을 잘 받았던 집은 그리 춥지 않아서 보일러를 작동시켜보니 숫자로 켜지는 온도는 영상 10도 정도였다. 20도로 올려놓고 황토방에 가보니 거기는 방에 걸어 놓은 온도계가 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가스는 남아 있어서 외출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방으로 다시 돌아와 수도꼭지를 열어보니 물도 잘 나왔다. 밤에는 유리창으로 냉기가 나오므로 모든 창에는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땐 네 군데의 창을 모두 가리게 된다. 예전에 셋집에서 혼자 자게 되었을 때는 한동안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를 즐겨 본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어두운 창 밖에는 꼭 연쇄 살인범이 있을 것 같아 공포에 떨어야 했다. 깊은 밤에도 안락한 서울의 아파트가 그리워지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혹독한 추위에 노출되어 있는 시골집은 아파트 같은 훈훈함이 없어서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겨울을 보내기가 훨씬 더 힘들다. 그래서 난로를 설치하기 하고 온풍기 등을 활용해서 최대한 덜 춥게 보내려고 애를 쓰지만 난방비는 도시가스의 몇 배를 각오해야 겨울을 날 수 있다. 나는 시골 생활에 대한 책을 구해서 읽고 셋집에서 살아보니 겨울 추위가 만만치 않은 걸 알았기에 설계를 맡길 당시에 건축가가 제안한 ALC 블록 집을 단번에 찬성하였다. 내가 학교에서 환경 수업을 할 때 유럽의 대부분 집이 친환경 소재이며 단열에 탁월한 ALC 블록으로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마음 같아선 패시브 하우스로 짓고 싶었지만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관계로 도배를 못하고 습기에 취약한 단점이 있지만 단열에서는 최우선인 ALC 블록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여름철 습기는 시스템 창문을 위로 조금 열어 놓는 걸로 환기를 계속 해왔다. 처음엔 화장실 휴지가 습기를 머금어 축축했는데 이제는 보송보송하게 잘 끊어진다.


작년 겨울은 집을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을 말릴 겸 보일러를 예약 기능으로 맞춰서 9시간마다 30분씩 가동하게 설정을 해놓았다. 겨울 동안 세 드럼 이상 기름이 들어갔고 한 드럼에 약 16~17만 원 정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습기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외출 모드로 해놓으니 아직 한 드럼 정도 밖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주말에만 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해서 만약 계속 살게 된다면 우리 집도 난로를 달아 장작까지 가세해서 연료비를 분산할 예정이다. 오전 열 시경부터 해가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하면 따뜻한 햇살에 집안 온도가 22도까지 올라가 보일러는 그대로 20도로 설정해둔다. 다들 알고 있는 거지만 보일러를 껐다 켰다 하는 것보다 일정 온도로 고정해 놓는 것이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하루 종일 온수도 어느 정도 쓸 수 있고 저녁에 외출했다 돌아오면 집이 따뜻하게 난방이 되어 있어서 훈훈하다.


집을 지어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는데 단열에 신경 쓴 집이 유례없는 혹한에도 잘 버텨주고 있으니 든든하게 안심이 된다. 다른 집은 상하수도가 모두 얼어 밥도 못 해 먹고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해서 산에 가야 했다니까 말이다. 자주 가지 않아도 낮동안 햇빛 잘 받고 지붕의 눈도 동네에서 가장 빨리 녹는다니 집이란 처음에 지을 때 선택을 잘 해야 두고두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동네 이웃들과 점심을 사 먹고 저녁은 얻어먹으며 밥을 한 끼도 안 하고 주말까지 있다가 남편 손에 이끌려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내 식구들 식사 시중과 집안일하느라 지쳤는지 동네 언니들이 차려주고 사주는 밥을 먹으며 해가 져도 밥할 걱정이 없는 팔자 늘어진 신세로 며칠을 지내고 오니 신선놀음하고 온 것 같아서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이 난다.


딸들은 이제 내 손을 떠나서 내가 있든 없든 자기들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남편이 유일하게 나를 성가시게 한다. 시골집에서 혼자 지내는 생활은 참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과일과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마당에서 잠깐 신선한 공기를 맡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루의 햇살을 받으며 엎드려 책을 보다가 졸리면 잔다. 심심하면 침실의 컴퓨터로 미드를 보기도 하고 간식을 챙겨 먹다가 오후에는 이웃들과 운동삼아 산책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러 가기도 하니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신경 쓸 것도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시골 생활이 나는 만족스러운데 이것도 남편이라는 제약이 있으니 더 꿀같이 달콤하려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노력 따위는 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첫째 딸 얘기를 하자면 평창 동계 올림픽의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는 부매니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총선 투표 출구 조사에서 팀장 해 본 경험도 있어서 카리스마와 체력을 겸비한 첫째에겐 한파와 싸우는 것만이 힘들 뿐 일을 수월하게 하는 편이다. 준비와 예산이 부족한 평창 올림픽이 제 딴에도 걱정인지 사전 개막식을 치러보니 할 말이 많아 딸은 쉴 새 없이 현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추위와 싸우려면 밥심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어서 식판 가득히 밥을 먹는 딸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며 놀란다고 한다. 씩씩하고 활달한 첫째는 이제 내 품을 완전히 떠난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허전할... 리가 없잖아!


둘째는 내년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졸업을 하고 나면 둘째도 내 품을 벗어나 저만의 세계로 떠나겠지만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은 상태라 아무것에도 애착이 없다. 갖고 싶은 것도 누리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통장에 돈이 있으면서 안 쓰는 거와 없어서 못 쓰는 거와는 상당히 기분이 다르다는 사실은 돈이 없어보니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평생 돈을 벌어서 돈이 부족할 때가 없었는데 돈이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돈이 없다! 옷은 남에게 얻어 입고 핸드백도 남이 주는 걸 잘 썼는데 여성으로서 매력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탓인지 윤기 촤르르한 캐시미어 코트도 입고 싶고 예전 동료가 샀다는 샤넬 백은 가지고 있으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물욕이 다 사라진 줄 알고 남편이 황토방 짓기 직전에 "정말 돈을 다 써도 되겠느냐?"라고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까지도 아무 미련 없다고 흔쾌히 가진 돈을 다 내놓았는데 내가 날 너무 몰랐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 각오로 근검절약하며 나물 먹고 이 쑤시면서 사는 수밖에.


밤새 내린 눈으로 곱게 덮힌 마당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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