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Mar 06. 2018

남편보다 멋있는 시숙

2월의 마지막 날은 봄비라기엔 차가운 비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여동생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딸을 기숙사에 입소시키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한 날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시숙이 오후에 서울로 오신다는 연락을 남편으로부터 받았다. 친정 일과 시댁일이 겹치면 언제나 시댁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남편에겐 표시 내지 않은 채 다음날 올림픽 공원 앞에 있는 근사한 중식당의 예약을 취소하고는 여동생에게 양해를 구했다.


남편과 통화를 하고 나자 시누이가 곧바로 전화해서 저녁 준비를 시누이 집에서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직 발가락 골절이 완전히 낫지 않아 걸음이 불편한 시누이는 병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그러면 내가 시장을 봐서 먼저 시누이 집으로 가있겠다고 했다. 여동생은 밤 열 시가 넘어서 오기로 했으니 그쯤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으나 시숙은 노래방을 가고 싶다고 하셨다. 뜬금없이 무슨 노래방인가 싶었으나 회의에 참석하러 오랜만에 서울로 오신 시숙의 뜻을 받들 수밖에 없어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우산을 받쳐 들고 노래방을 갔다.


웬걸, 노래방에 들어서자 흥에 한껏 겨워서 두 시간 동안 얼마나 신명 나게 놀았는지 모른다. 먼저 서울 나들이 오신다고 말쑥하게 차리고 오신 시숙이 한 곡을 부르자 두 달 동안 집안에서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던 시누이도 제 자리에 선 채 열창을 하며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이에 질세라 트로트의 황제인 남편이 성의를 다해 감칠맛 나게 불러젖힌다. 시누이의 남편은 자그마한 체구에 어디서 그런 우렁찬 소리가 나오는지 사자후를 토해내며 본인의 애창곡을 부르시니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가 오자 나는 그만 너무 흥분을 했나 보다. 춤과 노래를 한바탕 하고 나니 피가 심장으로 쏠렸는지 두통이 와서 머리가 아파왔다.


서로 양보할 새도 없이 각자의 기량 서너 곡씩 부르느라 분위기는 더 이상 흥겨울 수 없었고 시숙은 내게 춤과 러브샷을 권하며 78세인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매력을 마음껏 뽐내셨다. 우리 시숙은 대단한 멋쟁이로 넥타이를 고르는 맵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숙은 경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한약방을 운영하시고 부를 쌓으셨다. 여고 동창이 내게 들려준 바에 의하면 시숙의 한약방에 가면 세 번 놀라는데 명성에 비해 집이 허름해서 놀라고 원장님의 풍채에 놀라고 마지막으로 약발에 놀란다고 했다. 자수성가한 시숙은 성공한 남자의 분위기가 외모에서 그대로 풍겨져서 우리 아이들조차 "큰아버지가 왜 이렇게 멋지셔?"라고 말할 정도로 옷맵시나 자태가 근사할 뿐 아니라 그 연세에도 유머와 재치가 끊이지 않아 대화를 해보면 무척 유쾌하다.


나도 이제는 오십 줄에 들어 시숙과도 어려움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시숙 나이를 고려하면 언제 또다시 이런 흥겨운 모임이 다시 올까 싶어서 남편과 시누이는 집안에서 아버지 뻘인 시숙 앞에서 마음껏 재롱을 펼치는 게 눈에 보였다. 노래방 기계가 백 점을 외칠 때마다 시숙과 남편은 오만 원씩 꺼내어 탁자에 쌓고 그걸로 계산을 한 뒤 남는 돈은 가장 막내인 내게 줬다. 시누이는 수고했다며 시장 본 값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 나는 그 돈을 받아 마땅할 정도로 노래방에서 최고의 흥을 뿜으며 체력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놀았는데 그건 우리 시숙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밥만 먹으러 가도 여자들이 줄줄 따랐다는 전설 같은 시숙이다 보니 현란한 무늬의 넥타이를 말끔하게 매고 포마드 바른 머리를 말쑥하게 넘긴 시숙은 다시금 젊어지셨나 싶을 정도로 근사해 보였다. 남편보다 풍채가 훨씬 좋고 성격도 호방하시니 같은 형제라도 분위기는 전혀 달라서 온순하고 얌전한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멋이 있다.


다음날 남편은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며 나와 여동생 일행을 기숙사로 데려다주고 다시 집 쪽으로 와서 시숙을 서울역으로 모셔다 드리고 또다시 나를 데리러 학교로 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또 첫째가 페럴림픽에 일하러 가야 한다고 트렁크를 들고 기다리고 있어서 동서울 터미널로 태워다 줘야 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남편과 나는 소파에 앉아서 이틀 동안 수고한 몸을 쉴 수 있었다. 한파에도 현장일을 하느라 꺼칠한 남편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비록 멋은 조금 없지만 그래서 안심되는 내 남자라서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골 마을의 강원도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