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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27. 2018

이웃 밭의 풀 뽑기

얼추 허리 높이만큼 자란 쑥과 개망초를 두 손으로 잡아서 뽑아내기 시작했다. 여기는 우리 밭이 아니라 옆밭이다. 한 필지였던 땅의 절반을 잘라 샀기에 나머지 이백 평의 땅이 우리 집 옆에 나란히 있다.  작년에는 동네 분이 이 밭을 빌려서 콩 농사를 지으셨는데 땅 주인이 자기가 심어 놓은 사과나무는 돌보지 않았다고 도로 땅을 거둬갔다. 이백 평의 밭에 비닐로 모두 멀칭을 하고 울타리를 둘렀던 동네 분은 한 해만 지으려고 그렇게 땀을 흘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심이 커 보였다. 더 마음 아픈 건 작년의 콩 농사는 쭉정이 만 남고 콩은 들어있지 않아서 그 어르신은 고생만 하고 빈손을 털어야 했다.  


그러던 차에 밭주인으로부터 남편에게로 전화가 왔다. 자기 땅을 평당 얼마에 내놓았으니 우리도 그 정도에서 샀다고 누가 물으면 대답을 해달라며 우리 집의 지하수도 필요하면 빌려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한 남편은 우리가 밭이 작아서 그런데 옆 땅을 조금만 빌려서 농사를 지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내가 땅콩 때문에 작물을 심을 땅이 부족하다고 남편에게 말해왔기 때문에 마침 부탁할 기회가 오자 놓치지 않고 말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을 땅이 필요했는데 경계로 심어놓은 돌 옆으로 길게 고랑을 내어 고구마순 50개와 옥수수를 마음껏 심을 수 있었다.


옆 땅에다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들여다보다가 사과나무 사이로 삐죽삐죽 나있는 잡초가 눈에 띄어서 하나둘씩 뽑기 시작한 것이 남편까지 합세하여 그 밭의 잡초를 다 뽑았다. 개망초는 뿌리가 얕아서 잘 뽑혔지만 명아주처럼 호미로 캐야만 뽑혀 나오는 것도 있고 외래종인 돼지 단풍에 팔뚝이 긁히기도 했다. 뽑은 잡초는 사과나무 밑에 잘 둬서 거름도 되고 멀칭도 되게 했다.


이백 평이 되는 밭의 풀을 뽑고 나니 허리에 무리가 갔는지 오후부터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온다. 팔은 한나절 쉬니까 감각이 돌아왔는데 허리는 파스를 붙이고도 시큰거리면서 영 시원치 않아 남편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일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서 무리를 하니 내가 생각해도 미련하기는 하다. 그래도 시원하게 깨끗해진 옆 밭을 바라보니 돌아서면 다시 날 잡초일망정 당장은 기분이 좋았다. 남의 땅을 부쳐 먹으려면 이 정도 성의는 보이는 것이 도리인 듯도 해서 땀을 흘려가며 일하고 나니 손마디며 어깻죽지며 안 쑤시는 데가 없다.


5월의 정원은 싱그러움 그 자체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상쾌한 공기가 맡아지고 새소리를 들어가며 밭의 작물과 뒤뜰의 꽃과 마당의 잔디에 물을 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풀도 뽑고 거름도 주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종을 보면 세상만사를 잊고 부지런히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기를 머금어 더욱 싱그러운 마당을 쳐다보며 오전 내내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어도 그냥 시간이 지나간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을 바라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황토방을 청소하다가 서쪽 창문 위에 말벌이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이 무서워서 방안에서 낫으로 툭 건드려 벌집을 떼어냈는데 나중에 땅에 떨어진 벌집을 뒤집에 보니 안에는 까만 알속에서 하얀 유충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말벌이 떠나버려서 돌보지 못하는 유충은 죽을 것이라 생각되어 고구마 순 옆에 묻어버렸다. 그 뒤부터는 뒤뜰에 갈 때마다 벌이 귀에서 윙윙거리면 복수를 하러 왔나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말벌도 생명이 있는 걸 괜히 발견해서 마음이 찝찝했다.


말벌이 무서운 중에도 사진은 찍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벌레도 없는 요즈음의 시골 생활은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게 좋다. 서울에 오기도 싫은데 남편은 주부 없이 어수선한 집안에서 출퇴근을 하려니 낙도 없고 기운도 없다며 잔뜩 하소연을 한다. 아침에는 미숫가루 한 잔 타 먹고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사 먹고 저녁조차 딸들이 부실하게 차려주는 식사를 하니까 먹는 게 없어서 기운이 없단다. 그런 남편을 이웃은 왕자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엄마와 형수와 누나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자란 남편이니 국 없는 밥을 한 끼도 안 먹어보고 장가를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국수를 해도 금방 삶은 쫄깃한 면이 아니면 젓가락을 안 들고 맛있고 갓 만든 반찬만 집어대는 남편은 나더러 제발 어디 가서 애국자니 밥 밖에 모르니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것도 자꾸 들으니 듣기 싫다며. 여자들이 모이면 늘 하는 얘기가 남편 흉이고 밥 차리기 힘들다는 얘기가 주된 화제인데 밥 말고 다른 걸로는 끼니가 안 되는 남편과 사는 나로서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다. 요리에 열정이 있는 음식 잘 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왜 나랑 했냐고 따져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걸 나는 쓸데없이 목청을 높이곤 한다.


밥 때문에 이 좋은 시골을 두고 올 수밖에 없어서 나는 오늘도 밥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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