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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31. 2018

시골 생활에서 알아야 할 몇 가지

오전에 혼자 침실에 있는데 밖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천장에 서까래 모양으로 달아놓은 목재에서 수축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그 소리인가 하고 무심한 나는 그냥 넘겼다. 그런데 해가 지려고 하는 오후에 물을 주러 호스를 들고 거실 유리창 앞으로 갔다가 조그만 참새가 데크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커다란 유리창에 비치는 하늘을 보고 그대로 날아오다가 머리를 크게 부딪치고는 죽었나 보다. 혹시라도 기절한 것인가 싶어서 물줄기를 살짝 대봤는데 이미 죽은 것 같았다. 그래도 바로 치우지 않고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으나 죽은 채이기에 신문지로 감싸서 밭 한 귀퉁이에 묻어주었다. 쭉 뻗어 있는 가녀린 다리가 애처러웠다.



작년쯤인가 이웃집에 갔다가 그렇게 죽은 새를 보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서 유리창을 들이받고 죽은 새는 처음이었다. 오늘 만난 이웃이 그래서 시골에서는 낮에도 블라인드를 약간 내려놔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가엾은 참새는 나의 무지로 인해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받고 죽은 것이다. 새들이 있어서 시골 생활이 얼마나 즐거웠는데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새소리가 적막한 시골에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건만 그런 새들에게 해를 끼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시골 생활에는 도시에서 필요 없는 여러 가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지난번에 내린 폭우로 산 중턱에 사는 이웃집은 또 토사가 쏟아져서 피해를 입었다. 진흙에 잠긴 자갈을 물로 일일이 씻어내야 했다며 울화통을 터뜨렸는데 우리 집도 그 비에 피해가 생겼다. 작년 늦가을에 벚나무에서 낙엽이 많이 떨어져서 지붕에도 쌓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다리를 장만하지 않았던 우리는 지붕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 올라가서 배수관을 점검하지 않았더니 쌓인 낙엽 위로 물이 넘쳐 갈 곳 없던 비는 지붕과 벽의 경계를 타고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와 남편은 화장실에서 씻고 있었고 나는 소파 위로 물 얼룩을 발견해서 눈을 들어보니 거실 벽 곳곳에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여보! 집에 물이 새!"

"뭐라고?"



깜짝 놀란 남편은 화장실에서 뛰어나와 내가 손짓하는 벽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당시 남편의 심정으로는 비가 샌다는 내 말에 자존심이 확 상했다고 했다. 시공기술사의 자부심에 빗물이 사정없이 스며든 순간이었다. 자존심이야 어쨌든 간에 얼른 사진부터 찍고 소파와 탁자를 앞으로 당기고 걸레를 바닥에 두었다. 비가 많이 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겠지만 산발적으로 쏟아지던 비는 밤새 소강상태를 보여 우리는 아침까지 잠들었다. 시공해주신 분에게 연락을 하니 마침 우리 동네에 오실 일이 있다면서 사다리를 들고 와 직접 지붕에 쌓인 썩은 낙엽을 모두 제거해주고 가셨다.



남편은 퇴근길에 용문에서 사다리를 사 가지고 왔으나 이미 지붕은 다 처리를 한 뒤라서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래도 궁금하여 지붕 위를 올라가서 보기는 했다. 빗물이 쏟아지면 한 곳으로 모아서 배수관을 통해 아래로 내려오니 낙엽이 지는 늦가을에는 꼭 올라가서 청소를 해야 하는 구조였다. 황토방은 낙숫물 소리를 듣고자 일부러 배수 받이를 하지 않았는데 관리할 필요가 없어서 훨씬 편리하다는 것이 설계하신 분의 설명이었다.



전원주택이 손이 많이 가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지붕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니 정말 우리같이 게으르고 무지했다가는 때마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것뿐인가. 우리 집에 한 그루 있는 소나무를 손봐야 하는데 전지 하는 걸 동영상으로 공부하겠다는 남편에게 내가 오만원을 건다고 했다. 누가 와서 대신해주길 기다리는 편이 더 빠른 걸 알기 때문인데 아직까지도 우리 집 소나무는 무성한 채로 있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 남편이 이른 아침에 이슬을 잔뜩 머금어 잘 나가지도 않는 잔디를 기계로 깎고, 산 중턱의 이웃이 나무와 꽃을 준다고 오전에 삽과 호미로 캐서 집에 와서 심고는 바로 상원사에 걸어가서 점심을 먹은 뒤 산길을 내려와 서너 시쯤 집에 왔다. 체력이 약한 남편은 그렇게 하루 동안 무리를 하고 한동안 기운을 못 차렸다.  



요즘 모종 자라는 걸 보는 낙으로 사는 나는 아예 시골에서 지내며 잡초와 씨름 중이다. 하도 맨손으로 잡초를 잡아 뽑고 뜯고 하다 보니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 그래도 이제 곧 열매를 맺으려고 꽃을 피우는 고추와 토마토, 가지, 오이, 감자가 예쁘고 이파리를 힘차게 키워가는 옥수수가 믿음직하다. 호박은 또 어떤가. 비가 오고 땡볕이 비치니 갑자기 넝쿨뻗어가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대견한지 잔디밭에 동네 개가 누고 간 똥도 꽃삽으로 떠서 애지중지 호박 구덩이에다 묻어줬다.



깻잎 모종을 가져가라는 동네 이웃의 말에 좋다고 캐와서는 욕심이 지나쳐 흙에다 거름을 너무 많이 섞어 밭 둘레에 그 여린 모종을 심었더니 다음날 모조리 말라죽고 말았다. 며칠 뒤에 한번 더 캐와서 다시 심는 두 번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 뭐든지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산 중턱의 이웃은 이십일 여정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면서 내게 모든 작물을 다 따먹어도 좋으니 가끔 와서 물이나 한 번씩 주라고 부탁했다. 미리 가서 물 주는 걸 배웠는데 산이라 물 주는 것도 낮은 곳에서 은 곳으로 오르내리며 주어야 했고 우리 집보다 몇 배 넓은 곳이다 보니 물 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농사가 안 잊혀서 해외여행은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계획한 것이다 보니 간다는 이웃이었다.



나는 지금처럼 시골에서 아침저녁으로 물 주고 풀 뽑고 작물들 자라는 것이나 쳐다보는 것이 최고의 낙이다. 그동안 벌레가 없어서 좋았는데 오늘 오후에는 처음으로 모기에게 다리를 세 방이나 물렸다. 시골 살던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모기에 물리면 긁지 말고 비누로 잘 씻으면 가렵지 않다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지금은 말끔히 가라앉았다. 시골 사는 지혜는 배워두면 언제든 유용하다.




상원사 가는 산길에 피어 있는 함박나무 꽃

    


 

캘리그래피 작가인 손영희 선생님이 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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