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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n 08. 2018

6월은 앵두

드디어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터질 듯이 매혹적인 자태에 그 맛까지 나는 앵두를 무척 좋아한다. 작년에 심은 우리 집 앵두나무에서는 단 세 알이 열렸다. 그중 한 개가 탱글탱글하게 익어서 나를 유혹하고 있지만 아직 남편은 못 봤기에 차마 따서 먹지는 못하겠다.  


옆 농원에는 커다란 앵두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열매가 크고 엄청나게 많이 달려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눈독만 잔뜩 들일뿐 주변머리 없는 나로서는 주인인 어르신에게 앵두 좀 따먹겠다고 먼저 말할 수는 없다.


지난달에 쑥개떡을 만들려고 쑥을 캐다 보니 옆 농장까지 가게 되었을 때 언덕에서 큰 꽃 으아리를 발견했다. 하얗고 깨끗한 꽃을 보는 순간, 욕심이 나서 호미를 들고 캐기 시작했다. 자생한 것으로 짐작했으나 어느새 어르신이 다가와서 예전에 야생화 언덕을 만들어보려고 이것저것 많이 심어놓으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실 농사를 짓느라 농약을 뿌리니 모두 죽어버려 지금은 싹 베어버릴 것이니 다 캐가라고 하셨다. 먼저 주인의 허락을 구하고 캤어야 하는데 나는 여간 속으로 켕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얼른 집에 있는 견과류를 챙겨가서 농원의 컨테이너에 걸어놓고 왔다. 나중에 어르신이 잘 먹었다고 하셔서 큰 꽃 으아리 값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큰꽃 으아리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은 절대로 남의 땅에 있는 농작물을 건드리지 않는다. 주인이 허락해도 함부로 따지 않고 주인이 따주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농작물을 남에게 줄 때는 깨끗하게 다듬어서 먹기 좋도록 해서 준다. 돈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지만 키운 정성과 따서 다듬어 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농사지은 것을 받으면 꼭 답례를 하게 된다.


나에게도 농작물을 가져다주시는 이웃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아욱을 평상 위에 놓고 가시기도 하고 열무를 다듬어 주시기도 한다. 저번에는 부추 모종을 주시기도 했다. 나는 서울에서 우리 동네의 특산품(?)인 찹쌀떡을 사서 드렸다. 농사 밑이 걸다는 말도 있지만 농산물을 주실 때는 우리 집만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을 주셔서 서울에 가면 세 집 정도 나누어서 먹으면 알맞다.   


모레 일요일에는 비 소식이 있지만 한낮의 볕이 워낙 뜨거워서 산 중턱의 이웃집에 열흘 동안 세 번째로 물 주러 올라갔다.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쌈채소를 담아올 비닐봉지까지 챙겨서 한참을 올라가다가 문득 이 집에도 앵두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더니 그걸 기억해낸 자신이 너무나도 대견했다. 눈을 들어 쳐다보면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서 있는 앵두나무를 그동안 모자에 가려 물 주느라 고개를 숙이고만 다녔더니 앵두가 다 익을 동안 그 나무를 못 봤다. 앵두를 손으로 훑어서 물로 씻어 얼른 입에 털어 넣었다. 앵두는 이름처럼 생김새도 맛도 참 앵두 같다.




산중턱 이웃집의 앵두나무


옥수수와 땅콩 밭에 물을 주고, 감자와 야콘밭에 물을 주고, 고추와 오이밭에 물을 주고, 고구마밭에 물을 주고, 잔디밭에 물을 주고 넓은 화단의 꽃과 집 주변의 나무에 물을 주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주인이 없다고 살뜰히 보살핌을 못 받는 작물들이 가엾어서 오래오래 물을 주다 보니 어느덧 백운봉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쌈채소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사흘 전에 따갔는데도 다시 원상태로 자라 있어서 커다란 봉투 하나 가득 따서 담았다. 서울에 가서 이웃들에게 나눠주면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다. 물 주는 간간이 앵두를 한 주먹씩 따서 먹었더니 저녁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이웃집의 앵두는 옆 농원의 앵두만큼 탐스럽지가 않았다. 터질 듯 탱탱한 앵두를 기대했는데 알맹이도 작고 윤기도 덜난 것이 아무래도 전문적인 농원의 앵두보다는 부실해 보인다.


절대 따먹으려고 간 것이 아니다. 나는 옆 농원의 앵두와 비교해보고 싶어서 어스름한 저녁에 농원으로 가서 앵두를 보고 왔다. 정말 탐스럽고 뇌쇄적인 자태를 보고 오니 마치 애인의 입술을 훔치고 싶어서 애가 달은 남자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아무래도 밤에 몰래 앵두를 따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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