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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n 17. 2018

천국에 사시는군요!



감자 한 이랑에서 나온 게 요것 뿐


올해 감자는 씨알이 작고 수확량도 적었다. 가뭄 탓인지 감자 이파리가 시커메져서 캔 감자가 조림 감자 수준이다. 그래도 갓 삶아 먹는 감자 맛은 포실포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입 안 가득 느낄 수 있다.


따끈할 때 먹으면 더 맛있는 감자

감자 캘 때 오라고 친구들을 불렀다. 청소를 미리 안 해놔도 되고 음식 준비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으니 이래서 애나 어른이나 친구가 제일 좋은 법이다. 내가 총무를 맡고 있는 중학교 동창 모임에서 남자애 두 명과 여자 친구들 다섯 명이 와서는 남자들은 다락에서 자고 여자들 다섯 명은 황토방에서 비좁게 잤다고 한다. 나는 피부과 처방약 때문에 졸린 눈을 뜨지 못하고 친구들의 이불도 챙겨주지 못한 채 일찍 잤다.


족발을 사와 저녁으로 먹었다.


친구들이 자고 간 다음날, 우리 집 옆의 땅을 보려고 사람들이 왔다. 이웃이 모시고 온 손님들이라 집안으로 들어오시게 하고 황토방에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설회사 사장을 하다가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고 있는 부부와 역시 금융업계에서 지점장을 하다 은퇴하여 꽃을 가꾸며 살고 싶은 독신녀가 차례로 땅을 보러 왔다.


손님들은 잘 다듬은 잔디와 꽃밭을 보고 잡초 없이 가꾼 텃밭을 둘러보며 감탄과 부러움에 하는 말이 "천국에서 사시는군요!"라고 했다.


집을 지으려고 땅을 보러 다니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자리 잡고 사는 내 처지가 얼마나 부러운지 나도 안다. 맨땅에 머리 박는 기분만큼 막막한 집 짓기인데 오죽하면 나더러 이 집을 자기들에게 팔고 옆에  새로 지으라는 말까지 했다.


돈이 많아도 집을 짓는 건 역시 어렵다. 돈이 떨어져야 집이 완성된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평생 아파트를 짓던 건설회사 출신은 시공 전문가이기에 남에게 맡겨서 집을 짓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예전의 우리 남편처럼 집 짓는 걸 반대하고 있었다. 꼼꼼하고 치밀하기가 둘째라면 싸울 사람들이기 때문에 남이 하는 걸 두고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주택을 직접 지을 수는 없기에 나처럼 덜컥 일을 저지르고 보는 수밖에 없다.


남편은 손님들이 우리 집을 팔고 새로 지으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그럼 이번엔 벽돌집을 지어볼까?"라면서 즐거운 듯 농담을 했다. 원래부터 벽돌로 집을 짓고 싶어 한 남편이지만 단열 때문에 ALC로 집을 짓고 저렴한 드라이비트로 외장을 했기에 벽돌집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만약 다시 집을 짓는다면 북향의 넓은 다용도실을 갖고 싶다. 주말주택이니 지금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만 살림을 사는 입장에서는 음식물을 보관하고 온갖 잡동사니를 놓고 쓸 다용도실이 가장 절실하다.


눈만 뜨면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흙을 만지는 생활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사서 고생이 따로 없다. 텃밭에서 일을 좀 할라치면 벌레들이 꼭 눈가나 귓바퀴를 물어서 며칠 동안 가려워 고생을 하고 사람 만나기가 꺼려진다. 물리면 빨갛게 피가 맺히는 물것에게 양쪽 발목을 쏘여서 어찌나 가렵던지 피부과에서 주사와 약, 연고를 처방받아 겨우 가라앉혔다. 눈에 보이는 잡초를 수시로 뽑다 보니 손가락 끝은 늘 거무튀튀한 풀물이 들어있고 거칠다. 남들 눈에 깨끗하고 정돈된 텃밭과 정원은 주인의 고된 노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고 며칠만 내버려두어도 금세 사람 살지 않는 집처럼 어수선하게 변해버린다.  


그래도 초록 초록한 바깥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만 있어도 하루가 간다. 텃밭과 꽃밭에는 계속 잡초가 올라오므로 아침저녁으로는 적당한 소일거리도 있으니 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 좋은 노릇을 왜 안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시골에서 사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자연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무척 크기에 나는 요즘 '천국'에서 하루하루 기쁨을 누리며 산다.


주말에는 남편을 따라 집으로 오니 딸들이 "엄마에겐 모종들이 엄마의 첫 번째 자식들이고 우리는 그냥 서울에 사는 남편의 자식들?" 이러면서 나를 부쩍 놀려먹는데 재미를 들였다. "엄마 너무 귀엽지 않니?"가 요새 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조그맣고 씨가 있는 앵두로 만드니 두 병 밖에 안 나온다.


서울로 오는 길에 동행의 매니저가 운영하는 편백나무 찜 식당인 하남의 <도브로스>에 들러 앵두 잼을 전해주었다. 새콤달콤한 앵두 잼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어쩐지 내가 먹기보다는 좀 더 귀한 사람이 먹어야 할 듯싶었다.


옆 농원의 어르신이 은행알을 심어놓고 가물어서 싹이 안 난다며 지하수를 빌려달래서 이틀 동안 밭에 물을 주고는 앵두를 따서 한 바구니 주셨다. 조그마한 앵두는 따는 수고가 더 큰데 알알이 따서 주시니 더 고마웠다.





완치 기념 선물

완치 선물을 주고 싶다던 야아츠님이 내게 종이로 싼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미 부인인 모닝듀 님으로부터 귀걸이와 향수로 된 선물을 받았기에 어리둥절한 채로 종이를 펼쳐보았다. 야아츠님이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카페 글에서 읽었지만 이 귀한 십자가 보석함을 내게 주실 줄이야! 요즘은 동행에 거의 글도 쓰지 않는데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 씩이나 받는 건지 모르겠다.


남편은 저 조그만 서랍에다 보석을 다섯 가지나 채우려면 어깨가 무겁다며 쓸데없이 엄살이다.


동행 덕분에 길었던 투병 생활을 잘 보낼 수 있어서 내가 더 고마운데 감동적인 선물을 받기까지 하다니 이제야 완치의 실감이 나고 기쁜 마음이 든다.


나는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게 맞다.


세 알이 열린 우리집 앵두 나무- 내년엔 더 많이 부탁해


잡초가 자랄 새 없는 텃밭


호박 모종이 여섯 군데에서 자라고 있는 중


꽃을 늘 볼 수 있어서 좋은 목재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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