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Jul 09. 2018

도시 예찬

여행을 떠났다가 열흘 만에 시골집에 갔다.

초여름의 시골집은 오래 비우는 것이 아니었다. 텃밭의 옥수수는 어느새 개꼬리라고 하는 숫꽃이 자라나 있었고 토마토는 어지러이 가지를 뻗어 어떤 것은 흙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잡초는 각오한 대로 사정없이 집 주변으로 자라나 있었다. 잔디도 깎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북이 자라났다.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잡초가 빼곡하게 자라서 나무가 될 지경으로 굵어진 것도 있고 주차장, 집 뒤편, 마당 가장자리로 이름 모를 잡초가 무성하게 솟아나고 있었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사람은 풀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가는 아주 호된 꼴을 당하는 수가 있다. 날마다 살면서 조금씩 손을 보면 풀을 이길 수 있지만 사람이 늘 집을 지킬 수는 없는 법이라 이렇게 오래 집을 비웠다가는 풀과 한바탕 전쟁을 벌여야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도시의 아파트는 낯선 것이 어색하면서도 좋은데 시골의 집은 낯설면 바로 고생이다. 초록으로 된 모든 것은 비를 맞고 쑥쑥 키가 자라 있어서 목재 화분에 있던 비비추의 꽃대는 길게 자라다 못해 마당으로 아예 큰절을 하고 있었다. 눈에 익숙하던 공간으로 다시 만들려니 이틀 꼬박 집 주변을 맴돌며 풀을 뽑아야 했다. 마당이 어수선한 시골집을 보니 좀 무섭기까지 했다. 한여름엔 집을 비우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무를 가지치기하고 빨랫대에 케이블을 매는 등 자기 몫을 다 하느라 바깥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며 함께 일을 했다. 텃밭의 작물이 훌쩍 자라서 나 없는 사이에 열매를 키워온 것은 반가웠다. 가지와 토마토, 고추, 대파와 쪽파를 수확했다. 호박잎을 쪄서 쪽파와 고추를 썰어 넣은 간장 양념에 싸서 먹으니 부드럽게 넘어갔다.



옥수수와 자두는 용문 시장에서 산 것이다.


 





서울로 오니 시골집처럼 신경 쓸 것이 없는 아파트가 얼마나 한가한지 집안일 그까짓 것이야 한 시간도 안 걸리게 다 해치울 수 있고 반질반질한 집안에서 쾌적한 기분으로 앉아있으려니 시골에 살다가 나이가 들면 이래서 다시 도시로 나오는 이유를 공감할 수 있었다.



낮부터 비가 온다니 저녁에 하던 산책을 오전에 하기로 하고 간단히 현미수가 든 팩 하나와 휴대폰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고 도서회원카드를 들고 집을 나섰다. 성내천으로 내려가니 텃밭을 하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어서 내 밭의 작물과 비교해보느라 실례가 안 될 정도로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자식은 내 자식이 예쁘고 농사는 남의 것이 좋아 보인다는 말이 꼭 맞다. 잘 자란 호박잎과 무성한 작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송파구의  성내천 산책로



성내천 물가의 길게 자란 수초를 베는 작업을 하느라 몇 분이 낫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장정들이 일을 하니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내 집의 풀은 내 손이 안 가면 뽑을 수 없는데 도시의 풀은 구청에서 다 알아서 관리해주니까 걱정할 것이 없지 않은가. 성내천에서 이어진 올림픽공원으로 가면 더욱 감동적인 것이 커다란 나무와 깨끗한 잔디와 예쁜 꽃들이 계절마다 잘 손질되어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어서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올림픽 공원의 산책로


 꽃양귀비의 아찔한 자태도 올림픽 공원의 야생화 꽃밭에서 처음 보았다. 직장 다닐 때는 올 일이 거의 없던 공원이었는데 백수인 지금은 하루 건너 찾아오는 소중한 산책 코스가 되었다. 밤이 되어도 밝은 가로등과 많은 사람들로 무섭지 않아 늦은 시간까지 산책을 즐길 수 있어서 여름에는 더욱 고맙다. 봄가을에는 많은 가수들의 콘서트와 야외 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송파 도서관은 용문 도서관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책이 많아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우리 집과 오금 공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길이 자연스럽게 산책이 되는 것도 좋다. 비가 와서 시원하고 창문을 닫아놓으니 조용한 집에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다.



풀 때문에 좀 힘들다고 좋다며 야단이던 시골이 시큰둥하고 덥고 시끄러워 싫다던 도시가 요즘 좀 살만하다고 그새 도시 예찬이라니 나도 참 어이없는 인간이다.       






그래도 시골집은 늘 그립다.
놀러온 뒷집 어르신에게 냉오미자를 드렸다. 톱풀을 담은 홍차잔은 자고 갔던 카페회원의 솜씨이다.








작가의 이전글 빨랫줄과 가로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