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Sep 04. 2018

부부생활 탐구

주말이면 남편과 양평의 전원주택에서 쉬다가 온다. 요즘 남편의 일이 바빠 잠깐씩 들렀다 오기에 잔디는 길게 자라 사람 안 사는 집같이 되었지만 기계로 깎을 시간도, 체력도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둔다. 여름에는 서너 번 정도 잔디를 깎아야 하고 수시로 잡초도 뽑아야 하는데 잠깐 밭에서 고추만 따도 극성맞은 모기들이 달려들어서 순식간에 여러 군데 물리고 만다.  초음파 모기 퇴치 팔찌가 있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늘 물리고 난 다음에 생각이 나고 마당에 물을 줄 땐 물소리 때문에 효과가 없다. 긁고 나면 약을 바르고 참기 힘든 가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골 생활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지긋지긋한 벌레라고 치를 떨기도 한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이웃과의 교제는 시골 재미를 더하는데 주말이면 근처 이웃들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대화의 주제는 주로 부부 싸움이다.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하는 이웃이 많다 보니 부부가 함께 24시간을 보내면서 별 것 아닌 일로 투닥거리며 싸우고 그게 분한 나머지 만나자마자 푸념부터 늘어놓게 된다. 집집마다 성격도 다르다 보니 부부간의 문제는 모두 다르다.


우리 집부터 고백하자면 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고 현장 일이 힘든 남편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집안을 정돈하며 입이 짧은 남편 위주로 식단을 짜고 세심하게 그를  돌본다. (으잉?) 하지만 다혈질과 급한 성격을 지녔기에 남편은 "당신은 다 좋은데 그 성질만 좀 죽이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그 급한 성격이 나의 정체성으로 그것 때문에 남편은 집안일을 안 하고 편안히 지낼 수 있으며 빠른 나의 일솜씨 덕분에 지금까지 두 집 살림이 가능한 것을 모르고 있다. 나의 불만이라면 온순하고 착실한 남편이 다 좋은데 고리타분한 관습에 절어있고 체면이 많아서 별로 재미가 없다. 지금껏 '부부가 재미로 사나 정으로 살지'라는 마음으로 지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집집마다 사연이 어찌 그리 다른지 나는 남편이 좀 독립적이면 좋겠는데 어떤 집은 남편이 너무 자기 일에 빠져서 아내를 돌아보지 않아서 불만이다. 그 집은 남편이 집 위쪽에 땅을 더 사서 농사를 짓는데 새벽에 나가 저녁까지 밥 먹을 때조차 잘 내려오지 않아서 부부가 오손도손 놀러도 가고 얘기도 하며 노후 생활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아내는 늘 불만이다. 남편을 도와주려고 해도 혼자서 하는 작업이 더 편하다고 하니 아내는 거들 엄두도 생각도 없다.


또 다른 집은 아내가 열심히 정원 일을 하면 남편이 도와주고 함께 해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고 무심하다고 불평이다. 완벽하고 일 욕심 많은 아내를 따라가려니 힘에 부치기도 하고 꼼꼼하지 못한 남편의 솜씨로 기껏 해봐야 칭찬받지도 못하면서 핀잔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니 아내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영 마땅치 않다. 하지만 아내는 밖의 일은 일대로 하면서 밥때가 되면 호미를 던지고 쌀을 씻어야 하니 세끼 밥을 차리랴, 집안팎의 일을 꾸려나가려니 몸이 힘들어 절로 불평이 쏟아진다.


시골에 살다 보면 농사에 필요한 거름도 얻고 고기와 알을 취하려 닭을 키우면 일석삼조가 된다. 냄새와 시끄러운 닭울음소리 때문에 이웃에 폐를 끼칠까 봐 망설이고 동물을 키우면 집을 떠날 수 없는 어려움도 따른다. 하지만 농사일에 열심인 사람은 닭을 키우고 싶고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반대를 하니 위의 두 부부도 한 집은 남편이 다른 집은 아내가 닭을 키우고 싶다고 하고 나머지는 반대를 해서 맹렬한 토론을 벌여야 했다. 토론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불평이 시작되어 토론은 결국 다툼으로 대부분 끝을 내린다.


철저히 아내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내가 보기엔 다른 집 남편들도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인데 저마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고 집안을 꾸려온 아내의 오랜 공로가 있는데 (남편도 물론 수고했지만 남자는 알게 모르게 일탈도 해가며 살지 않았는가?) 그걸 인정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아내의 울화는 평생 풀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만 가다가 사소한 일 하나로 폭발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성학자인 박혜란 님의 책을 보면 아침에 계란을 두 개 삶아 두 부부가 먹으려고 하는데 마침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고 나서보니 먹지도 않은 자신의 계란이 없어지고 그렇다고 두 개 먹은 사람도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웃집에서도 욕실에 안 쓰던 린스 통이 나와있기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손을 안 댔다는 얘기를 하기에 와서 좀 보라고 아내가 불렀다고 남편은 자신을 무시하냐면서 대판 싸웠다고 한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싸우게 되고 싸우다 보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까지 나오면서 끝장을 보게 되니 하루 종일 얼굴 보며 지내야 하는 은퇴부부는 결국 눈만 마주치면 싸움닭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지금은 내 남편이 아침에는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고마운 처지이지만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되면 저 남자가 뭘 하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것인지, 젖은 낙엽처럼 내게 찰싹 달라붙어 "어디 가느냐. 언제 오느냐. 내 밥은 어쩌고?"를 달고 살까 봐 아닌 게 아니라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나도 쌈닭으로 변신할 날이 다가온다.



꽃씨를 심어서 키운 백일홍



작가의 이전글 며느리가 말하는 가성비가 0인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