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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an 28. 2019

시골집을 팔라고요?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처음에는 절대 크게 하지 말라는 주위의 충고대로 백 평에서 이백 평의 작은 땅을 사서 본인의 취향대로 깔끔하게 새집을 지어 꿈에 그리던 시골 생활을 하게 된다. 봄이면 온 동네에 피는 꽃도 꽃이지만 조그만 내 화단에 자고 나면 피어 있는 작은 꽃 한 송이는 마치 첫사랑처럼 설레는 기쁨을 준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들고 정원을 둘러보며 어젯밤까진 없던 야생화가 살포시 피어있고 꽃봉오리가 밤새 방싯 벌어져 있는 걸 보면 부르르 온 맘이 행복으로 떨린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되어 씨앗이나 모종을 밭에 심고 아침저녁으로 돌보면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4월부터 11월까지는 '내가 이 맛에 시골에 와서 살지.'라는 순간을  날마다 느낄 수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날마다 땀 흘리는 노동을 했으니 12월에서 3월까지는 지친 몸을 쉬면서 관절과 근육이 실컷 풀어지도록 늘어진 여가 시간을 즐기면 된다. 이웃끼리 모여서 늙은 호박으로 전과 죽을 끓여 먹고 만두를 빚어 먹으며 다가올 농번기를 준비하는 것인데 마을에 따라 조금씩 겨울을 보내는 방식이 다르다.



이웃집의 초대로 먹은 떡만두국



노인회가 잘 구성되어 있는 우리 마을은 겨울이면 경로당에서 주말을 제외한 날마다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남자 회원이 65세가 되면 노인회에 가입할 수 있고 부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남편을 따라 가입할 수 있다. 시골이라 농작물이 풍성하고 재료가 싱싱할 뿐 아니라 솜씨 좋은 동네 아낙들이 많아서 점심 밥상이 푸짐하고 맛있다고 한다. 우리 동네도 원주민보다 이주민의 비율이 많아지다 보니 올해 이장이 처음으로 이주민 출신이 되었다. 그래서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 온 이웃들도 동네 노인회에 가입하여 경로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며 지루한 겨울을 잘 보내고 있다.


나와 친한 이웃 중 칠십이 갓 넘은 남편분은 서울대를 나왔는데 예전에 배웠던 사교춤을 발휘하여 '행복마을 경연대회'에 우리 마을 무용팀으로 나가 무대 중앙에서 한들거리는 허리로 상을 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공을 인정받아 노인회 이사가 되었는데 춤 솜씨만 아니라 전혀 지적으로 보이지 않는 어눌한 말솜씨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분의 아내는 노인정에서 점심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고는 "시골에 너무 잘 왔고 앞으로 노후 생활은 조금도 걱정할 게 없다."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나처럼 작은 땅과 집으로 시작하는 전원생활을 몇 년 하다 보면 땅이 조금 넓었으면 하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 시골에 살다 보니 심고 싶은 나무가 많고 나무 사이에 간격을 충분히 두어야 하니 몇 그루 심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심을 곳이 없게 된다. 유실수와 꽃나무를 욕심대로 다 심으려면 삼백 평은 넘어야 가능하다 보니 주변의 이웃 중에도 집을 내놓고 더 넓고 싼 땅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좋은 분들이라 내 딴에는 정이 함빡 들었는데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 얼마나 섭섭하던지 처음에는 원망의 마음까지 생겼다. 하지만 차차 지내다 보니 우리도 나무를 더 심고 싶고 농사일도 요령이 생기니 땅이 더 필요해졌다. 마침 우리 집 옆 땅을 동료가 사서 올해부터는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땅이 부족해서 넓은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시골에서 이웃과 마찰이 생기면 이사하는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도시와 달라서 눈만 뜨면 마당에서 서로 봐야 하는 처지이니 내가 아는 이웃 중에 동네 고양이들에게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하며 보살피는 분이 있는데 그 옆집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쥐약을 놓아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죽었다고 했다. 그중 한 마리는 집으로 돌아와 자기 앞에서 죽었다면서 아무래도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목공을 하는 남편과 미술을 하는 부인이다 보니 공방이 필요하고 자재를 쌓을 곳도 필요해서 이백 평 남짓되는 지금의 집이 좁아 조금 더 넓혀서 갈 목적도 있다고 하는데 작년부터 계속 땅을 보러 다니고는 있으나 막상 마음에 드는 땅은 맹지인 경우가 많아 쉽지가 않다고 했다.   


친정 엄마는 지금의 시골집을 팔고 좀 더 산 쪽으로 들어가 허름한 집을 수리하여 불 때는 황토방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현대적인 우리 집이 엄마 취향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평생의 꿈을 이룬 멋진 집을 팔고 한적하고 허름한 흙집을 찾아보라니 옛날 엄마가 자란 시골의 정서를 맛보고 싶으신 걸 알겠다. 아마도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를 너무 심취하여 보신 게 아닐까 싶다. 자연인에 나오는 사람처럼 집을 수리하며 만들어가기엔 엄마의 사위가 근력이 없고 의지도 없을뿐더러 나까지 그렇게 조르다간 차라리 이혼을 택하는 게 수월할 사람인 걸 엄마도 모르시진 않을 텐데 엄마의 희망사항은 그냥 희망인 걸로 접는 수밖에



작년에 찍은 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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