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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18. 2019

봄 오길 기다리다.

농사를 시작한 후부터 겨울을 참고 봄이 오길 기다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주말에 가는 시골집은 난방이 되어 있지 않아 춥고 초록빛이 가신 바깥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서울의 아파트 생활은 더 답답해서 봄을 기다리다 못해 목이 빠질 지경이다가 드디어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찾아왔다.


올해는 집 옆의 땅을 빌려서 농사도 크게 지을 거고 마당의 나무들도 재정비하려니 마음은 진작부터 바다. 우리 집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뿐이어서 마당이 휑하게 보인다고 겨울 내내 불평하던 남편 때문에 지난 주말에 이웃으로부터 소나무 한 그루를 분양받아 심었다.


나무가 자리 잡힐 정도로 자라면 그걸 옮겨 심는다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모른다. 호미로 먼저 나무 밑동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파고 삽으로 흙을 떠내는 동안 나무 전체를 돌아가며 전지가위로 뿌리를 잘라야 한다. 뿌리를 그냥 뽑아서 뜯어버리면 나무가 죽기 쉬우니 가장 아래쪽의 제일 굵은 뿌리를 찾아 잘라주면 나무가 흔들거리기 시작하고 그러면 거의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웃과 우리 부부 네 명이 호미와 삽과 길고 짧은 전지가위를 들고 낑낑거리며 애를 써서 겨우 나무를 옮겨 심었다. 산에서 낙엽이 썩어 영양이 많은 부엽토를 긁어와서 흙과 섞은 후 옮겨 심은 나무뿌리에 골고루 넣어주었다. 거름은 뿌리가 내리고 난 다음에 주면 된다고 한다.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어본 이웃 부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했지만 시골 생활 몇 년이 지나도 초보티를 벗지 못한 우리 부부는 생으로 힘을 쓰느라 기진맥진하였다. 나이가 우리보다 많은 이웃부부는 그래도 힘이 남는지 한 그루 더 심어보자고 했지만 이미 체력을 소진한 남편과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였다.


시골에서 살면 나무 욕심은 끝이 없다. 눈만 들면 사방이 산이고 나무인데 꼭 제 집 마당이어야 하냐면 그렇다. 온갖 유실수며 꽃나무를 야금야금 심다 보니 어느새 마당이 꽉 차 버리는데 그래도 심고 싶은 나무는 늘어만 가해마다 나무를 옮겨 심느라 집집마다 분주하다. 그렇다고 너무 조밀하게 나무를 심으면 보기에도 답답하고 나무도 서로 엉키게 되어 좋지 않다. 옆 농장의 어르신 말씀이 대추나무가 제일 늦게 자란다더니 우리 집 대추나무는 몇 년째 묘목 심은 그대로이다. 살구나무가 가장 잘 자란다. 앵두와 자두나무도 좀 쑥쑥 자라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데 몇 년째 안 자라다가 갑자기 쑥 크는 수가 있다니 입맛을 다시는 중이다.   


울타리로 심은 화살나무는 너무 촘촘해서 솎아주어야 나무 모양이 예쁘게 자란다고 하니 그것도 손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시골에서 사는 사람 치고 우리 부부처럼 게으른 사람은 별로 없다.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농사일을 야무지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이웃들 보기에 부끄러워서 나는 곧잘 남들 앞에서 우리 부부는 둘 다 게으르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면 남편은 제발 그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타박이다. 게으른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번번이 이웃에게 폐를 끼쳐야만 일을 하는 남편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데 그 소리는 듣기 싫은가 보다.


이젠 농사일을 시작해야 한다. 작년에 농사를 짓지 않고 내버려둬서 누런 잡초로 뒤덮인 옆밭을 갈고 거름을 뿌려 뒤집어야 하는데 엄두가 안나 남편과 내가 밭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앞집 이웃이 예초기를 가져와서 싹 밀어주셨다. 그 이웃은 아침부터 나와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하시는 분이다. 우리 동네 민폐 부부는 이렇게 또 농사일을 시작하는가 보다.


남편이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 한다.


이것은 눈썰미 없는 내가 대충 한 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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