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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14. 2019

사서 고생이지만 고생이 즐거움인 시골 생활

앵초가 꽃대를 올렸다.

오롯이 내 몸 하나만이 가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내키는 대로 마구 시간을 쓰며 바다를 거닐고 싶다. 바다는 새파랗고 파도는 높다. 끝없이 생겨났다 부서져 소멸하는 하얀 파도를 싫증 날 만큼 바라보다가 바다로 창이 난 아늑한 방에 들어간다. 내 기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글을 읽으며 홀로 단잠을 잔다. 검은 바다 위에 노란 달이 뜨면 더없이 좋겠다.

                                                                                                             <산골에서 혁명을> -박호연 에세이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키우며 산골에서 사는 분이 쓴 글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했다. 비록 바다를 볼 수 있지는 않지만 시골집에서 일주일 동안 오롯이 나 혼자만 있는 시간을 지내고 온 나는 육아를 하느라 24시간 묶여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미안한 심정이었다. 주부로 오래 살아보니 시중들거나 신경 쓸 가족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가 없고 구석진 곳의 스탠드 하나만 켜은 공간은 아늑하고 고요하다. 낮에는 돌을 나르고 흙을 파며 보내고 밤에는 락발라드를 크게 틀어 흠뻑 즐기는 봄맞이 휴가는 꿀같이 달았다.


주말이 되자 옆 밭의 주인인 동료 부부가 지난 가을에 땅을 사고 난 후 처음으로 왔다. 묵은 잡초를 제거하고 밭을 갈아 키우기 쉬운 고구마라도 심어보려고 한다는데 고등학교 때 농업을 배웠다는 동료의 남편은 삽과 괭이질이 익숙해 보였다. 잠깐 동안 이랑 두 개를 만들어 양분이 없는 땅에 거름을 약간 섞어 놓았다. 갑자기 안 하던 노동을 하면 힘들다고 말리는데도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라 괜찮다면서 두 부부는 밭 가장자리의 키 큰 잡초를 말끔히 뽑아서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삼겹살과 상추를 사오기에 밭에서 월동 시금치와 쪽파를 캐와서 간단히 점심 상을 차렸다. 식사가 끝나자 따뜻한 봄 햇살을 쬐며 데크 위의 의자에서 잠깐 졸기도 하면서 시골의 봄 정취를 누리고 가신 두 분은 자꾸만 두고 온 밭이 어른거리고 농사도 더 짓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능력이 된다면 나머지 밭도 마저 일궈서 고라니 망을 치고 이것저것 심어보라고 했더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농사 전문 지인을 섭외해서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남편과 내가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고 체력만 된다면 노는 땅에 들깨라도 심어 보겠지만 둘 다 그럴 위인이 못 되는데 깔끔한 성격의 동료 부부는 생각보다 일을 잘했고 심지어 주변에 알고 지내는 농사 달인이 많았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나보다 더 밭을 잘 가꾸며 농사를 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제는 동료의 둘째가 고3이고 집에서 밭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여서 자주 올 수 없다는 점이다. 동료 부부가 밭을 일구고 모종을 심어 놓으면 물 주고 가끔 잡초나 뽑아 주는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별로 자신은 없다. 돌을 나르고 자갈을 옮겼더니 지금까지 몸 상태가 욱신욱신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서 고생 하는 재미에 들이면 나처럼  밖에 모르는 사람 되는데 깨끗  좋아하는 동료가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짓게   몹시 궁금하다.



밭을 일구는 동료의 남편과 옆에서 거드는 시늉만 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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