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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22. 2019

아이들은 모종 심기를 싫어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남들도 그럴 거라는 믿음은 일방통행이라는 걸 또다시 깨닫는 일이었다. 지난 토요일에 암 카페 운영진 가족을 <모종 심기 체험>이라는 명분으로 시골집에 초대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네 명의 아이들이 옥수수와 상추 모종 심기를 할 수 있도록 용문장에서 모종을 사 왔으나 막상 모종 심기를 하기 싫다는 게 아닌가. 쌍꺼풀 진 눈이 예쁘게 생긴 남자애는 "저는 누가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걸 제일 싫어한다고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거름을 섞어 만들어 둔 부드러운 흙에 꽃삽으로 구멍을 내어 물을 부은 뒤 귀여운 모종을 심고 주변의 흙으로 꼭꼭 덮어두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힘이 들지도 않고 심기만 하면 수확할 수 있는 맛있는 작물을 심기 싫다니!


할 수 없이 텃밭에서 어른들끼리 상추를 심고 저녁에 도착할 두 아이들을 위해서 옥수수 모종은 남겨 두었더니 다행히 심고 싶다고 해서 휴대폰 불빛을 켜고 야간작업을 했다. 한 명은 호스를 잡고 모종 구멍에 물을 넣고 한 명은 모종을 심었는데 나중에는 하기 싫다던 아이들까지 거들어서 34포기의 옥수수 모종을 삐뚤빼뚤 다 심었다. 다음날 아침에 물을 주면서 모종 줄을 맞춰서 몇 개 고쳐 심었지만 석 달 뒤에 다 자라면 자신들이 심은 옥수수를 따서 맛있게 먹을 아이들 생각에 흐뭇했다.


한창 날뛰는 남자아이들 네 명이 모이자 계단이 위태로운 다락을 오르내리고 온 집안과 밖을 뱅뱅 돌면서 술래잡기를 하느라 정신이 쏙 빠지게 시끄러웠다. 아들을 안 키워본 남편은 한두 번 다락에 오르지 말라고 했으나 아이들이 말을 안 듣자 그만 감당이 안 되어 어느새 황토방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어른들은 낮에 만들어 둔 나물 서너 가지로 비빔밥을 해서 저녁을 먹었다. 화살나무 새순을 따서 만든 홋잎 나물과 미역 취나물, 머위나물을 무쳐 오이무침과 함께 고추장에 비벼 먹으니 황홀한 봄나물 맛에 숟갈 드는 속도가 절로 빨라졌다. 요 며칠 동안만 따서 먹을 수 있는 여린 나물이기에 더욱 감칠맛이 있었다.  


우리 동네는 농촌 체험 마을을 운영하고 있는데 체험객들을 인솔하는 농촌지도사인 이웃 언니가 아이들은 모종 심기보다 농작물 따기 체험을 훨씬 좋아한다고 했다. 맛있는 걸 따먹는 게 당연히 좋지 않겠냐며 달콤한 딸기나 블루베리 같은 걸 좋아한다고 일러주었다. 근처 농장에서 바로 따서 위탁 판매하는 민들레 식당에서 딸기 두 상자를 주문했다가 한 상자는 손님들과 먹고 나머지는 세 집으로 나누어서 들려 보내는 걸로 아쉬운 체험 활동은 막을 내렸다.   


아침에 산 중턱 이웃집에서 미역취와 화살나무순과 머위를 따고 점심에는 그걸 삶아 무치고 저녁을 함께 먹고 자정이 넘어 돌아가는 손님 배웅을 하고 나니 다음날은 팔다리 어깨가 쑤셔 또다시 에고 지고를 외치며 누웠다. 남편은 농사 준비와 나무 심기를 하고 나서 감기몸살을 앓느라 나보다 더 엄살을 하는 중이니 둘이서 황토방 구들을 지고 누워 오후 내내 잤다. 시골집을 둘러보면 구석구석마다 해야 할 일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지만 몸이 안 따라주니 어쩔 수 없이 항상 다음으로 미루고 만다.


시골에 오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른데 반려견에게 마당을 선물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 좋아하는 음악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크게 틀어 듣고 싶은 사람, 꽃을 마음껏 키워보고 싶은 사람, 어릴 적 했던 농사일이 좋아서 오는 사람, 나처럼 건강이 안 좋아져서 공기 좋은 시골로 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집이 특이하게 생기고 마당이나 집이 크지 않아서 은퇴 후 시골로 오려는 분들이 구경하러 가끔 오신다. 그러면 누구에게든 우리 동네로 꼭 오시라고 하고 집을 지은 건 살면서 세번 째로 잘한 일이라는 둥 묻지 않아도 시골 살이를 떠들썩하게 설명하느라 나혼자 바쁘다. 시골집에만 오새처럼 명랑해지는 내가 남편은 좋댄다. 서울과 시골 집을 오가면서 평소에 안 하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덤인데 한 시간이 넘어가면 서로 힘들기에 딱 적당하다 낄낄거리며 동의했다.  


황토방의 낮은 창문으로 보이는 야생화들은 월동을 하고 해마다 개채 수를 알아서 늘려가는 예쁜 꽃들이다.


내사랑 앵초! 꽃잎이 하트다 하트~♡
무스카리 -그레이프 히아신스라고도 함
튤립 뒤로 보이는 건 하얀 꽃이 피는 미선나무
수선화와 그 옆에는 상사화 잎
복주머니라는 뜻의 금낭화
앵두나무꽃
꽃잔디 뒤로 보이는 항아리는 새들이 와서 물 마시는 용도


명자나무 꽃
목재 화분에 일년생 꽃을 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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