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Apr 30. 2019

농사를 지으며 얻는 것

아이들이 삐뚤빼뚤 심은 옥수수 모종



1. 인생을 배운다.

반백년을 살아도 다 모르는 게 사는 이치인데 흙과 함께 하는 농사에서 우리의 인생을 배울 때가 많다. 요즘처럼 밑거름을 하고 모종을 심는 시기에는 사람에게 있어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린 모종에게 너무 과한 거름은 해가 된다. 땅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약간 모자라다 싶게 퇴비를 섞어 밭두둑을 만들어 주고 충분히 발효되도록 기다렸다가 모종이나 씨앗 심는다.

봄 날씨가 가늠이 어려워서 모종을 심고 나면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춥거나 비가 많이 오는 경우가 많아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햇빛 잘 드는 곳에 구덩이를 판 뒤에 호박씨를 심고 신문지로 고이 덮어 놨다가 싹이 나면 가장자리에 눌러놨던 돌과 신문지를 거둬주고 햇빛을 충분히 받도록 해줘야 한다. 마르지 않도록 물을 충분히 줘야 하는 건 물론이다. 싹이 나고 모종이 뿌리를 완전히 내려 자리 잡을 때까지는 항상 신경을 쓰고 자주 물을 주는 등 세심하게 돌봐줘야 한다. 어린 시절에 보살핌을 충분히 받아야 튼튼하고 안정되게 자랄 수 있는 건 사람이나 작물이나 같다.



2.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다. 

실제로 작물이 사람의 소리에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는 널리 알려져 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는 것이 유가 아닌 사실이라는 뜻이다. 부드러운 음악을 들려주어 키우는 작물이 병충해가 적고 잘 자란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고 한다. 문전옥답이라는 말도 집 앞에 논이나 밭이 있으면 아무래도 자주 들여다보고 정성을 쏟게 되니 먼 곳의 논밭보다 수확량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잡초도 베어주며 웃거름도 주면서 자주 눈길을 주게 되는 작물은 먼 곳의 작물보다 충실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내 손으로 키운 작물이 더 맛있는 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일 뿐 아니라 내 몸에 더 이롭다고 믿게 되었다. 지금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에는 토종 옥수수 씨앗이 배양토에서 심어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초록색 싹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부지런히 물을 주며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기에 딸들은 모종이 엄마의 첫 번째 자식이라고 놀리기까지 한다. 봄에 심어 여름까지 정성을 들이면서 키우는 농작물이 열매를 주렁주렁 달면 말 그대로 땀 흘린 보람이 이만할까 싶다.



3. 같은 씨앗이라도 결과는 다르다. 

씨앗은 되도록 알차고 충실한 것으로 남겨 놓지만 심어 놓고 키우다 보면 크고 작고 부실하고 튼실하기가 제각각 다르다. 같은 이랑에서 똑같이 물주며 키워도 어떤 것은 병충해를 입어 비실거리고 어떤 것은 탁월하게 자라 가장 큰 수확물을 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내 가진 분수에 만족하며 생긴 대로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자는 마음가짐이 절로 든다. 못난 자신을 속상해하거나 잘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도 모두 부질없다는 깨달음을 흙에서 배운다. 날마다 땅에 엎어져서 풀을 뽑고 작물을 보살피는 일을 하면서 흙투성이로 지내지만 책에서도 얻을 수없는 귀한 배움을 체험한다.



4. 내 몸의 한계를 안다.

감당할 수 있는 밭의 한계를 넘어가면서 남편과 싸우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와 남편이 좋아하는 땅콩을 심으면서 서로 좋은 이랑을 차지하려고 하고 퇴비도 더 많이 심으려고 욕심내면서 자기가 하는 작업은 중요하고 상대가 하는 작업은 하찮게 생각하니 신경전으로 시작되다가 싸움으로 끝났다. 올해부터는 땅이 옆 밭으로 늘어나서 땅콩 모종을 백 개 이상 심게 되어 하다 보니 힘에 부쳐 서로 말을 안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옥수수는 종묘상에서 모종을 사면 이듬해까지는 열매를 얻을 수 있으나 다음 해부터는 싹이 안 트고 옥수수가 부실하게 열리도록 만들어져 나온다. 토종 씨앗을 키우면 개량종보다 씨알이나 수확량이 적지만 해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다. 땅콩은 수입 해당 작물이 아니라서 씨앗을 해마다 심어도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종묘상에서 알려 주었다. (이걸 몰라서 모종을 사야 할지, 씨앗을 심어야 할지 여러 날 고민했다.)



4.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시골집을 짓고 삼 년째로 접어들자 앞뒤 마당과 텃밭이 이제야 어딘지 모르게 정리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무들도 완전히 자리 잡아 잎과 꽃도 만발하게 되어 더욱 싱그러운 정원으로 바뀌었다. 꽃밭의 야생화도 키높이에 맞춰서 다시 심고 가꾸기를 반복했더니 이제는 제법 체계가 잡혀 간다. 나무를 심어도 다음 해에 바로 싹이 나거나 하진 않아서 기다림이 필요했다. 집은 몇 달 만에 빈 터에서 우뚝 들어섰으나 마당에 심은 꽃과 나무들은 천천히 자기들의 속도에 맞춰서 꽃 피고 잎이 달렸다. 나무는 뿌리가 충분히 내리고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비로소 잎을 내고 꽃이 열리고 마침내 열매도 열린다. 이웃집의 배나무는 심은 지 십 년 만에 배 열 개가 열렸는데 작년에 두 개를 주셔서 먹어보니 작지만 배 향기가 진하게 나서 정말 맛있었다.    



5. 기본이 중요하다.

퇴비 포대에 '진짜 농부는 흙을 살리고 초보 농부는 싹을 살린다.'는 문구가 있다. 처음에 이랑 몇 개를 빌려 농사를 시작할 때는 밭주인이 씌워주는 비닐에 땅콩을 심어 땅콩이 모조리 비닐 아래 붙어버리기도 했고 고추에 한 번 뿌려주는 농약도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는데 이젠 자연농법의 4 무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 원칙 중에 무비료와 무농약은 실천 중이다. 땅힘을 더 길러야 가능한 무경운(밭을 갈지 않음)과 무제초(잡초를 제거하지 않음)는 아직 몇 년을 더 노력해야 가능하기에 넓은 옆 밭에 퇴비 구덩이를 만들어놨다. 거기에 낙엽, 나뭇가지, 부엽토, 음식 쓰레기, 잡초, 이엠 효소, 깻묵, 오줌 등을 넣어서 발효 중이다. 무럭무럭 김이 나고 구수한 냄새까지 나는 천연퇴비가 만들어지면 내년에는 그걸로 밭을 덮어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기름진 흙으로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그러려면 비닐을 쓰지 않고 대신 밭에서 나는 것으로 이랑을 덮어야 한다. 잡초가 나지 않게 하려고 덮은 비닐에서 자라는 작물은 영양 성분에서 차이가 난다니 어쨌든 흙이 좋으면 지팡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시골에 가면 흔하게 보는 애기똥풀이 산책로 벤치 틈으로 가련하게 피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은 모종 심기를 싫어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