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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07. 2019

아플 때는 집이 최고인데

제목과는 다른 이상한 글이 되었다.

시골집에는 냉장고가 작아서 주말에 갈 때 서울 집에서 음식 재료를 조금씩 덜어서 간다. 된장이나 고추장이 차례로 떨어지거나 참기름이나 현미유가 다 되어 가진 않는지 자주 확인해서 챙겨가야 하니 꽤 성가신 일이다. 수확이 시작되면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들로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리게 된다. 상추는 물만 부지런히 주면 밤새 쑥쑥 자라니 벌써 따서 쌈 싸 먹는 중인데 아삭아삭한 맛이 마트에서 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금요일 밤에 시골에 도착하니 개구리 소리는 와글와글 들리고 싱그러운 밤공기가 더없이 상쾌하였다. 뒷마당의 라일락이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고 한동안 볼 때마다 기쁨을 주던 앵초는 이제 꽃잎이 하나둘 씩 지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체력이 없다는 소리는 자주 했지만 이번 연휴에 그걸 증명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옆 밭의 동료 부부가 모종이 든 종이 박스를 양손 가득 들고 도착하였다. 고구마, 호박, 오이, 가지, 고추, 옥수수 등을 심어보려고 가져왔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 하니 남편과 내가 거들어 이건 여기 심고 저건 멀리 심으라고 하면서 물 호스를 끌어다 놓는 등 함께 심었다. 그런데 호박 모종이 열 개가 넘어 구덩이를 파느라 남편이 힘을 좀 썼나 보다. 감기를 길게 앓고 난 후 회복세를 보이던 남편이 그 날 오후부터 열이 치솟고 오한이 드는 증세가 부쩍 심해졌다. 뜨겁고 달콤한 차를 끓이려니 그런 건 모두 서울 집 냉장고에 들어 있고 가져다 놓은 꿀도 바닥을 보였다. 누룽지나 끓여 먹이고 나니 모든 게 갖춰지지 않은 시골집에서 간병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되어 병원도 가야 하니 일요일에 철수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용문산 산나물 축제를 가보고 싶었는데 남편이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판에 축제에 가보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연휴라도 월요일에 문을 여는 병원이 있으려니 하고 서울에 왔지만 동네 내과들은 진료를 하지 않았다. 몸살은 잘 쉬기만 해도 나으니까 남편은 거실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 티브이 리모컨과 함께 본격적인 휴식에 들어갔다. 입맛이 없다고 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이고 뜨거운 차와 물도 갖다 주었지만 남편의 길고 긴 환자 노릇에 나는 슬슬 싫증이 나는 중이었다. 연휴란 주부에겐 끝없이 되풀이되는 식사 준비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나가서 사 먹기도 기운이 없고 배달 음식은 어쩌다 시켜먹는 집이다 보니 없는 반찬이라도 냉장고를 탈탈 털어 해내야 다. 나도 남편에게 감기를 옮았는지 두통과 오한이 오고 기침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간호해야 하니 결론은 싸움밖에 더 있겠나.


점심때가 지나 딸이 외출하려니까 남편이 "누구 만나는데?" 하고 물었다.

"친구"라고 대답하는 딸

"친구 누구?"라고 또 묻는 남편에게 내가 끼어들어 "친구 누구라면 당신이 알아? 그리고 그럼 친구 만나지 회사 상사를 만나겠어?"라고 하고는 "집에서 의문문으로 대화 좀 하려고 하지 마. 당신은 대화랍시고 뭐든지 묻는 걸로 하니 대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성가신 줄 알아?"라며 평소처럼 말했는데 남편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딸이 나가고 한참 뒤에 남편은 내게 딸 앞에서 자신의 험담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남편이 말 꺼내는 순간부터 나는 기분이 팍 나빠져서 잠자코 듣다가 속마음은 어쨌든 겉으로만 잘해주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늘 상냥하게 잘해줘야만 좋아하는 남편이 미워서 그랬다. 별나기로 하면 순위 권에 드는 시집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내게 잘하기를 끝없이 원하고 거기에 더 잘하기를 바라는 남편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원망이 펼쳐진다. 나도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싶고 화가 나면 그걸 누르려고만 하고 싶지 않다. 이젠 참고 사는 건 안 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내 인생에 태클을 거네.


싸웠지만 저녁은 먹어야겠고 누가 먼저 말을 거나 두고 보자고 안방에 누워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배고픈 남편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비굴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밥을 차려주길 원했다. 그릇을 탕탕 던져가며 음식을 만들어 저녁을 먹고는 또다시 누워 자는 것 밖엔 할 게 없었다. 냉장고에서 시들어 가는 토마토를 프라이팬에 볶아 치즈를 얹어 뜨끈뜨끈하게 먹으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안락하고 쾌적한 서울의 아파트에 있으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고 부족함이 없지만 그 속엔 즐거움도 없다. 집 밖까지 동선이 길어서 계속 움직여야 하고 없는 게 많은 시골집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엔 기쁨과 만족이 있다. 라일락 향기가 있고 새소리가 있으며 내가 와서 물 주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어여쁜 모종들이 있으니 오늘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시골집으로 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출근 준비하는 딸에게 물어봤다. 아빠가 자꾸 물어서 성가시진 않은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솔직히 그렇다고 했다. 역시 딸은 엄마 편이다. 남편의 절친인 집이 아들만 둘인데 그 집 부부가 어떤 일로 싸우게 되었다. 운동 동호회에 나가는 남편 절친이 남녀 동석으로 술자리를 자주 가지게 되고 그걸 사진을 찍어 누군가 부인에게 전달을 했으며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지게 되어 부인의 귀에까지 들어가 남편을 추궁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다 큰 아들들이 아빠 편을 들어 왜 엄마는 아빠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냐고 하더란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부인은 몇 달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는데 내 생각엔 갱년기와 빈 둥지 증후군이 합해져서 그 명랑하고 밝았던 부인에게 멘붕이 오지 않았을까 싶다. 식사 자리에서 둘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어쨌든 원인 제공을 한 아빠 친구가 문제라고 단칼에 결론을 내려서 내가 역시 포청천이라고 칭찬을 해줬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 집에서 남편이 소외되는 건 딸 둘의 육아에 전혀 동참하지 않았고 젊었던 날에 가정을 돌보지 않던 남편에게 당연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은 회사 일을 핑계로 모든 회식에 빠지지 않았고 장거리 출근하던 나에게 육아와 시모와 살림을 모두 맡겨둬서 나로 하여금 혹독한 시절을 보내게 한 죄 이미 크기에 요만큼의 동정도 과분하다고 여겨진다. 정말 솔직한 내 심정을 여기에 고백하자면 둘 다 연금이 나오는 2025년에 졸혼을 하려고 했더니 좀 당겨서 해야 하나 그 생각까지 했던 게 어젯밤이다. 여자의 한은 이토록 깊고도 처절한 법이니 남편들이여 등골이 서늘하지 않은가!   


양지꽃
꽃마리
봄맞이꽃

 양지꽃은 좀 크지만 꽃마리와 봄맞이꽃은 아주 아주 작은 꽃이라 땅 가까이 눈을 내려야만 그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두 시골집 진입로에 피어 있지만 사진은 검색으로 골랐다. 너무 작은 꽃이라 찍지 않았는데 오늘 가서 찍어야겠다.



역시나 너무 작아서 초점이 맞질 않는다. 파란 꽃이 꽃마리이고 오른쪽 하얀 꽃이 봄마중꽃


미국산딸나무꽃인데 한 송이가 그새 피어있다. 송이송이 꽃송이가 가득 덩굴에 달려 있으니 마냥 흐뭇하다.


큰꽃으아리가 곧 필 듯이 봉오리가 방싯거린다. 앵초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라일락 꽃 피는 봄이 오면 둘이 서로 손을 맞잡고~~


황매화와 골담초
작년에 꽃씨를 심은 샤스타데이지


마지막 튤립


둥글레콫으로 은방울꽃을 못 가진 자의 설움을 달래며


심은 적이 없는데 자라는 느릅나무


딸기밭


안녕 앵초야 내년 봄에 또 만나자~♡


베어낸 벚꽃나무를 황토방 외벽에 세워 나름 장식이라고 했는데...
이웃집에 핀 큰꽃으아리 점차 하얀 색으로 변한다.
동네에 우거진 꽃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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