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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09. 2019

텃밭 농사는 이제 자신 있어요.

몇 년째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텃밭을 가꿔왔지만 이제야 요령을 깨달아 실패 없이 농사를 짓는다. 텃밭 농사의 핵심은 순 르기와 거름인데 호박과 토마토의 순을 적절히 정리해주고 여러 가지 거름을 적당히 주면 튼실한 작물을 얻을 수 있다. 쑥쑥 자라는 동네 분들의 텃밭을 보면 고추에 복합 비료를 한 숟갈 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만든 쌀뜨물, 난각칼슘, 질소 액체비료만으로도 작물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매주 번갈아 정성껏 뿌려다. 텃밭에 풀매기와 물 주기는 날마다 해야 하는 일과이다.  


정리할 줄 몰라서 그동안 덩굴만 우거졌던 방울토마토는 이제 곁순을 수시로 제거해주고 원 줄기 하나만 키워야 열매가 충실하니 과감히 곁가지는 잘라줬다. 호박 줄기는 어미 순을 잘라주면 아들 순에서 호박이 몇 배로 열렸고 아들 순을 잘라 손자 순을 키우면 호박 모종 하나에서 백 개의 호박을 딸 수도 있다. 물론 거름을 많이 주어야 한다. 밑거름이 충분해야 하는 옥수수와 땅콩은 유박, 깻묵, 축분 거름을 섞어서 심고 웃거름도 가끔 주었더니 동네에서도 뒤지지 않는 작황을 보인다.


이것도 농사라고 짓고 있냐는 지인들의 비웃음만 사던 우리 집 텃밭이 이렇게 변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농사를 잘 짓는 이웃의 도움과 틈틈이 귀촌 카페에서 눈동냥해가며 익힌 정보가 큰 힘이 되었다. 키운 농작물로 시골에 놀러 온 지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기도 하고 서울의 아파트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약을 치지 않고 키운 호박, 오이, 고추, 가지, 깻잎, 호박잎, 부추, 감자 등은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도 되기 때문에 요리하기가 훨씬 간편하다. 채식을 주로 하는 우리 집은 지난달 식비가 삼십만 원이었다. 농사를 지어도 수확물이 적어 가져 올 것이 없 몇 년 동안 불평 없이 기다려준 아파트의 이웃들에게 호박잎과 고추와 오이를 따서 나눠주었다. 호박잎을 먹으면서 자라온 분들이라 무척 기뻐하면서 반색을 했다.


토마토의 맛을 진하게 하기 위해서 물 2리터에 소금 한 숟갈을 타서 2주 간격으로 뿌려주라는 이웃 언니의 말에 토마토 열 주에 엷게 탄 소금물을 뿌려주고 왔다. 작년에는 토마토 풍년이었지만 맛이 싱거워서 그냥 먹 않고 냄비에다 졸여서 요리에 넣어 먹었다. 올해는 텃밭에 아로니아 나무를 두 그루 심었기에 토마토 하나에 아로니아 스무 알 정도 넣어서 갈아먹으면 건강에 좋은 아로니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뭐든 늦되게 배웠다. 고등학교에서 접한 독일어 정관사 16개가 낯설어 도무지 혼란스럽기만 하더니 1학년 1학기의 독일어 성적은 믿기 어려운 '가'를 받았다. 당시에는 울면서 배우는 독어가 웃으면서 졸업한다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자 곧 적응했지만 내 인생 최초로 받은 성적표의 충격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대학 가서 교양 철학은 또 어땠는가? 입시를 위해 덮어놓고 외웠던 철학을 들으니 마치 처음 독일어를 접했던 혼돈의 시기가 또 찾아와서 영락없이 낙제 점수를 받고 말았다. 내 전공에는 서양, 동양, 한국 철학이 들어 있어서 학년이 올라가자 비로소 배움에 눈 떠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력이 생기기도 했다.  


농사도 정성만 있다면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것을 왜 그동안 헤매고 있었는지 나처럼 똑똑하지 못하고 미련한 사람이라도 시간이 더 걸릴 뿐 실패와 경험을 통해서 마침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텃밭에서 또다시 배운다.


나의 일주일은 3도 4촌으로 이루어진다. 일요일 저녁이면 남편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즐겁지만 고단한 농사로 지친 몸을 쉬면서 수요일까지 지내다가 목요일이 되면 남편의 출근길에 아침 식탁을 차려주고 전철로 양평을 간다. 남편 차로 가면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전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세 시간이 걸려서 시골집에 도착한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며칠 못 본 농작물을 먼저 확인하고는 뒷마당의 꽃밭에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살핀 후에야 집으로 들어가 내려놓은 블라인드를 걷고 환기를 하는 등 비어 있던 시골집에 활기를 더한다. 새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적막한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조용한 이틀은 말할 수 없이 좋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낮잠을 자다가 그도 지루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낮 시간을 보내고 아침과 저녁나절은 집 앞 뒤의 풀을 뽑고 텃밭과 꽃밭을 돌보며 바쁜 시간을 보낸다. 이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나의 노동력이 시골에서는 유용하니 그것이 기쁠 뿐이고 남편의 불평만 없다면 시골에서 머무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골라 먹는 재미를 위해서 감자 순을 따지 않고 그냥 키우면 이렇게 다양한 크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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