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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n 13. 2019

영화 <교회 오빠> 회식의 뒷이야기

도시 한가운데서도 마당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니!

영화 <교회 오빠>의 배급사 대표가 영화 제작에 수고한 KBS 제작팀과 도움을 주신 분들, 배급사 직원 그리고 주인공인 오은주 님을 모시고 회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마카다미아님인 은주 씨가 아름다운 동행 카페 운영진도 초대를 했다. 하지만 매니저인 야아츠님과 부매니저인 아빠는밥팅이님이 일정이 안되어 참석을 못 하신다 하고 엄마는강하다님과 내가 가기로 했다. 엄강님은 회사가 회식 장소 근처여서 퇴근하고 나와 만나 함께 약속 장소로 갔다.


7호선 학동역 근처의 M가든이라는 곳으로 가니 건물 2층의 중정에 나무와 꽃이 있고 야외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잠시 단체 사진을 찍으러 나가본 정원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수국과 허브가 심어져 있어서 제법 싱그러운 초여름의 마당 같았다. 야외 테이블에는 외국인을 비롯해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이 앉아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소담스러운 식당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식전 요리부터 샐러드, 스테이크와 후식까지 모두 입맛에 맞고 지나치지 않게 꾸며져 나와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배급사 대표가 본격적인 식사 전에 한 사람씩 소개하면서 2분 발언을 하자고 하여 살짝 긴장이 되었다. 직장 다닐 땐 남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젠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멋진 옷도 없어서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진 것 같다. 어쨌든 나의 순서는 돌아왔기에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좋은 곳에 초대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제가 대접하는 건 아니지만 시골집에 촬영하러 왔을 땐 제작팀이 차갑게 식은 식사를 했으나 여기서는 따뜻하게 드시라고 했다. 다들 영화와 관련된 소감을 말해서 내 딴에는 색다르게 한다고 했는데 영판 밥집 아줌마 같은 말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따져보니 거기서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  


연출을 맡은 철관음님인 이호경 피디는 일본 특파원으로 2년간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며 몇 년 동안 <앎> 다큐를 제작하느라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눈 수술까지 하셨다고 은주 씨가 알려주기도 했다. 은주 씨는 볼 때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미모를 회복(?)하고 나타났다. 어제는 허리를 묶은 검정 드레스와 찰랑거리는 은빛 귀걸이를 하고 가늘고 높은 샌들을 신고 와서 전체적으로 반짝거렸다. 나이도 아직 젊거니와 원래 은주 씨가 동행 카페에 밝힌 것처럼 '곱게 자란' 편이었기에 시간이 지나자 어여뻤던 본래의 모습이 되었다. 은주 씨 말대로 자기 인생 중에서 가장 못 생겼을 때 영화 주인공을 맡아 한스럽기도 할 것이다.


대체로 삼사십 대의 젊은 남녀들이다 보니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대화는 시종일관 유쾌하였다. 음식이 맛있어도 위를 절제한 엄강님과 나는 코스 요리는 한 점씩만 먹으면 배가 불러  식전 요리 한 접시만으로도 이미 허기는 채워져서 덜어 먹는 스테이크를 한 입씩만 먹고 옆 테이블로 넘겼다. 특히 먹어야 하는 음식이 계속 나오는 코스요리나 음식이 즐비하게 쌓여 있는 뷔페 요리는 먹기도 전에 부담이 되어 오히려 평소보다 덜 먹게 되는 경향이 있다. 맛만 보고 말아야 하니 음식에 대한 욕심이 사라져서 이제는 산해진미를 보아도 별로 식탐이 생기지 않는다.    


오신 손님 중에 인상적이었던 분이 있었다. 영화 시사회 때 눈물 닦으라고 "한 장이면 충분한" 흡수력 좋고 먼지 없는 템포 화장지를 기증해주신 템포코리아의 대표였다. 바닥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성분이었는데 조용조용한 말투와 살포시 웃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동안 쓰던 한살림 재생 휴지 대신 백화점에서 판매한다는 템포 화장지를 우리 집에 두고  쓰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생각을 어찌 아셨는지 갈 시간이 되자 선물 포장이 되어 있는 템포 갑 티슈와 휴대용 티슈를 하나씩 들려주시기까지 했다.


하나님은 부족한 내게 늘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을 항상 감사하게 여기며 사는데 어제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집에 돌아와 나를 기다리던 남편과 둘째에게 "시골에 안 살아도 마당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더라."며 어쩐지 배신감이 들어 크게 말했다.


한 접시만 주문해서 엄강 님과 반씩 나눠 먹은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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