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언니가 브런치에서 시골집 짓는 걸 읽었다면서 필요한 것 있으면 쓰라고 백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준 적이 있다. 집을 지어본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돈이 한정 없이 들어가고 집을 짓고 난 다음에도 끊임없이 돈이 들어간다. 사촌 언니가 준 돈으로 시골집의 블라인드를 집 전체에 달 수 있었다. 울타리로 화살나무를 둘렀는데 그건 시누이가 준 돈, 시골집의 식탁은 미국에 사는 언니가, 거실과 다락의 에어컨은 여동생이, 컴퓨터는 남동생이 해줬다. 부엌의 싱크대는 친정엄마의 후원이다.
어쨌든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에 브런치 작가의 내 이름을 올려둔 걸 보고 친척 결혼식에서 만난 사촌 언니가 뜻밖의 돈을 줘서 통장이 비어가던 나는 감지덕지하며 덥석 받아 들고 왔다. 그 내용을 브런치에 쓰기도 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첫째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더니 첫 글에 바로 합격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가장 씩씩하고 튼튼한 첫째를 미국에 보내고 나는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다. 시골 생활에 푹 빠져 바쁘기도 했고 궁금할 만하면 먼저 딸이 사진과 근황을 알려왔기 때문인데 미국 친구들조차 이런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한국 가족들이 너를 잊은 건 아니냐며 놀리기도 한다는데 그동안 궁금했던 미국 소식은 딸의 브런치를 읽고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글에서 첫째는 얼마 전 급성 위경련으로 길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된장찌개에 참기름을 들이붓는 실수로 시작되어 쓰러지기까지 원인과 과정 그리고 현재는 나아졌다고 안심시키기까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필력으로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내 딸이지만 나보다 글솜씨가 낫다.
무심하고 쿨하기가 북극 빙하 같던 나에게도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 길에 쓰러져 지나가던 차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조된 딸의 브런치는 댓글로 사랑을 고백하게 만들고 오십만 원을 송금하게 했다. 앞으로 매달 이 금액을 보낼 테니 먹는 거 아끼지 말고 몸 건강히 견디라면서 딸에게 처음으로 먼저 연락을 했다. 딸에게 브런치를 하면 이런 식으로 돈이 생긴다고 알려주기도 했지만 몇 시간을 공들여 글을 쓰고 나면 때로는 이처럼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하고 또한 즐거운 일이기에 갈수록 늘지 않는 구독자와 댓글에도 꾸준히 글을 써서 발행하고 있음을 안다. 시간이 많으니 단지 취미로 글을 쓴다는 딸에게 글이 쌓이면 다음 포털이나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기도 하고 구독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마음을 다해 격려했다. 그렇지만 구독 신청은 하지 않았다. 찾아서 읽긴 하겠지만 딸이 마음껏 자유롭게 외국 생활을 맛보고 즐기며 누리라는 쿨한 엄마의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