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이라는 물 좋고 산 좋은,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에 터전을 잡고 지낸 지 5년이 되어간다. 농사는 경험이라 이젠 주위에 나눠주기가 바쁠 정도로 농작물을 풍성하게 수확한다. 장미나 백합 밖에 모르고 살다가 플록스, 탑풀, 꽃범의 꼬리, 범부채, 백일홍, 벌개미취 같은 꽃 이름도 줄줄 읊을 수 있게 되었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몸에 좋은 채소를 먹으며 지낸 덕분에 계절마다 나를 괴롭히던 비염과 햇빛 알레르기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처음엔 남편이 집 짓는 걸 반대해서 부부싸움까지 했지만 지금은 "시골에 안 왔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라는 소리를 자주 한다. 신혼 때는 남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게 우리 집 가훈이었는데 이제는 아내 말만 잘 들으면 만사형통이라고 하니 남편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갈수록 말을 잘 듣는 남편이 되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고 싶어 서울로 오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남편이기에 시골집의 마당 설거지를 하고 함께 돌아왔다. 어제는 말복이라 늘 식사에 초대해주시는 이웃 부부를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하여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다. 닭과 돼지고기를 삶고 닭 육수로 떡국을 끓이고 황백지단까지 올렸다. 텃밭 채소로 호박, 가지, 오이, 고추 반찬을 하고 부추와 방아로 부침개를 했으며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으로 상차림을 마무리했다. 대부분의 요리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다져서 장식을 한 것 같다. 늘 초대받기만 하다가 모처럼 한 상 차리니 이웃 부부는 이런 것도 다 할 줄 아냐고 놀라신다. 요리에 별로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지만 땡초보다 맵다는 시집살이를 한 경력으로 이 정도 밥상은 두 시간 동안 뚝딱 차려낼 수 있다. 그릇이 변변찮고 모양새도 없어서 사진을 찍진 않았다.
앞에 있는 꽃이 벌개미취, 뒤쪽의 흰 꽃이 꽃범의 꼬리이다. 빨간 건 백일홍, 오른쪽이 후록스
살수록 좋아지는 시골 생활이지만 의외의 복병은 존재한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는 원주민과 관계는 하기 나름이다. 먼저 숙이고 들어가고 인사성 바르게 굴면 요즘은 이주민들이 많아져서 마을 주민이라고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히려 은퇴를 하고 시골에 들어온 이주민끼리 문제가 생긴다. 양평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아파트를 두고 온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말해 부자들이고 그 부는 좋은 학벌과 직업으로 이룬 것이니 주위의 이웃들은 박사, 지점장, 연구원, 회사 임원 출신들이다. 그들과 어울려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출신 대학이나 과거 이야기가 나오게 되니 지방 대학을 나온 우리 부부는 빨리 대화의 주제가 바뀌기 만을 기다리게 된다. 대놓고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묻는 몰지각한 사람은 물론 없지만 은근히 밝혀주기를 바라고 모르면 궁금해한다. SKY 출신들은 남들이 궁금해하기 전에 첫 만남부터 먼저 본인들이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자식 자랑과 돈 자랑은 밥 사면서 하는 걸로 암암리에 약속이 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지갑을 열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랑에 침이 튀는 사람은 다음 모임에는 제외된다. 밥은 잘 사지만 입만 열면 자랑 단지에 불이 나는 사람도 돌려세운다. 돈이 많지만 말끝마다 돈돈하면서 인색한 사람은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기 어렵다. 적당히 베풀며 너그럽게 어울려야 시골 생활에서 여러 이웃들과 정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마을 이웃들과는 자신이 하기 나름으로 잘 지낼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으니 그건 바로 경계를 함께 하는 이웃과의 관계이다. 학벌과 직업에 상관없이 이상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 의도하지 않게 그런 이웃과 담을 함께 나누게 되면 시골 생활은 날마다 꾸는 악몽으로 바뀐다.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웃, 개나 닭을 키워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 이웃, 비닐을 태워 발암 성분의 연기를 보내는 이웃, 나무가 자기 집으로 넘어오니 말도 없이 잘라버리는 이웃, 측량을 다시 하자며 사사건건 시비 거는 이웃 등 내가 아무리 좋은 말로 잘 지내려 하나 막무가내인 이웃을 만나면 도시처럼 쉽게 집을 사고팔 수 있는 곳도 아니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원주택은 사방 이웃과 최소한 일이백 미터 이상은 떨어져 있는 곳이 아무래도 홀가분하고 살기에 편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좋은 땅을 구해서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이웃과 좋은 마을에서 기분 좋은 시골 생활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꾸준히 발품을 팔고 다니다 보면 딱 이 곳이다 싶은 땅이 발견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집을 지어 꿈에도 그리던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된다.
귀촌 카페에 아이디가 '야생인'이라는 분은 '중년의 로망 찾다 구지 되어 새벽에 마누라 옆구리를 발로 툭 차 자는 것 확인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열도 안 되어 있는 컨테이너로 가서 버너에 불 붙여 줃어온 분홍 소파에 앉아 봉지 커피 한 잔 타는' 걸로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 귀촌 카페에는 나처럼 굳이 시골에 가야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구구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그 마음을 알 수 있어서 글을 읽고 있으면 공감이 많이 된다. 전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삶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우주의 기운이 몰아서 도와준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