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집을 마련한 이후로는 여름휴가를 따로 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 많은 곳으로 멀리 가는 것도 힘이 들어 내키지 않는다. 집 근처에 동네 사람들만 가는 작은 계곡이 있으니 더운 오후에는 계곡물에 발 담그며 그늘에서 두어 시간 보내면 에어컨 바람보다 더 차가운 계곡 바람에 춥다.
시골은 낮에 덥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시원하다. 잔디밭에 자리를 깐 뒤, 던지면 펴지는 모기장을 치고 자정이 되도록 누워있다가 눅눅한 밤이슬에 옷이 젖으면 집안으로 들어간다. 여름의 시골집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호사는 창 밖으로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면서 서늘한 잠을 자는 것이다.
시장은 봐오지 않아도 된다. 오이와 가지를 따서 무치고 부추와 매운 고추로 부침개를 만든다. 호박으로 나물과 국을 끓여먹기도 한다. 직접 기른 채소가 약간의 양념만으로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에 밥상이 부실하다는 느낌이 없다. 밥이 질리면 채소를 넣어 끓인 육수로 소면을 삶아 잔치국수를 먹기도 한다. 시골집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는 쾌적하고 즐겁다. 심심할 땐 친한 이웃에게 연락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요즘 용문사 근처에 부쩍 늘어난 카페에서 후식을 먹으며 사는 얘기를 나누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시골은 항상 좋지만 특히 여름휴가철에 시골집의 가치는 올라간다. 주변 지인들이 가끔 숙박을 하고 싶다고 하면 안 쓰던 다락도 걸레질을 하고 너저분하게 놓고 살던 살림을 싹 치워서 정돈해둔다. 지인이 약간의 비용을 두고 가면 그걸로 겨울 기름값을 충당하니 서로 좋은 일이다.
시골에 살면서 때로 힘든 순간도 있다. 벽걸이 에어컨을 끄려고 리모컨을 들고 올려다보니 축축한 에어컨 속이 좋은지 방바닥에서 보던 지네가 길게 누워 있었다. 바닥에 있는 건 내가 처리하기도 하지만 이 상황은 감당하기 어려워서 남편이 지네 전용 집게로 집어내어 바닥으로 떨어진 지네를 도망갈까봐 파리채로 마구 쳤다. 밭에서 농작물을 따거나 꽃밭에 잡초를 뽑으려면 꼭 긴 옷을 입고 모기 기피제를 뿌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깜빡 잊고 무방비 상태로 나갔다간 순식간에 달려드는 모기에 여러 군데 물려 한참동안 몹시 가렵다. 여름엔 나방, 그리마, 말벌부터 온갖 벌레가 많지만 그러려니 하고 대범해져야 시골에서 지낼 수 있다.
휴가의 절정인 지난 주말에 서울에 있는 시누이 내외와 조카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시골에 왔다. 텃밭에 넘치는 깻잎과 고추를 직접 따가시라고 먼저 전화를 했더니 시누이는 불러만 달라며 기꺼이 딸과 외손자를 데리고 오셨다. 남편은 더운 여름에 시누이 가족을 초대한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그건 바로 "당신이 최고야~ 당신이 최고야~"라는 트로트를 관광버스 춤과 함께 부르는 것이다. 남편이 잔뜩 흥겨운 표정으로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누이는 얼마 전에 검진을 했다가 기관지와 폐가 좋지 않으니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살라는 의사의 권유를 들었다고 했다. 시누이는 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밤에는 시골이 무서우니 우리 집 근처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침묵으로 내 의사를 표시하곤 했다. 손이 빠르고 야무진 시누이는 못하는 게 별로 없어서 농사와 정원 가꾸기를 잘할뿐더러 무척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앞집이 전세라서 시누이가 눈독을 들이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골 생활을 한다고 들면 어찌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시누이와 우유부단한 나의 성향은 서로 어울려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그동안 잘 지냈다. 이번에도 시누이는 어디를 둘러봐도 나만큼 좋은 사람이 없다며 칭찬했다. 호박잎도 아니고 깻잎 몇 장에 왜 그러시냐고 했지만 칼칼한 시누이의 성품을 받아들이기엔 내가 너무 물렁해서 몇 번의 일을 겪으며 이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낸다. 조카 부부에겐 앞으로 집을 빌려줄 테니 가끔 애들과 놀다 가라고 하며 시스템 창호와 독일식 이중 잠금인 부엌문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시골에 오니 흥분해서 마구 날뛰는 아이가 무척 귀엽지만 남편은 시끄럽고 정신없는 걸 견디기 어려웠던지 찜질방같이 더운 황토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방학에 학교의 보수 공사가 몰려서 휴가도 없이 일하는 남편이지만 주말마다 조용하고 선선한 시골에서 편안하게 보내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휴가보다 더 만족스러운 건 없고 내 집에서 보내는 휴식보다 더 편안한 건 없기 때문이다. 시골집은 여름휴가를 보내기에는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