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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an 11. 2016

당신이  얼마밖에 못 산다면?

원래는 재미와 유머가 있는 일상적인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전문적이고 유식하며 필력까지 출중한 그들의 기세에 눌려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심지어 나 따위가 뭐하려고 여기에 끼어들었을까 후회까지 들었다.


오랜 기간 글을 써서 나를 잘 알고 있는 암 카페에는 남편 헐뜯기에서부터 딸들 흉보기까지 신명 나는 수다로 암에 지친 여러 회원들에게 꽤나 즐거움을 드렸다고 자부했는데 신변잡기를 브런치에 올리기엔 뭔가 께름칙하였던 것이다.


브런치라는, 이름도 고급진 이런 곳에다 가족들 이야기나 떠들려니 뒤통수가 근질거려서 뭔가 자꾸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게, 친한 사람들은 나만의 색깔을 찾아 원래대로 재미를 달라며 힘을 빼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한 번 주눅이 들고 나니 단번에 힘을 빼기가 어렵고 시간이 가면 차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격려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작가라는 이름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일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회수에도 신경이 쓰이고 구독자 수가 증가하는 것이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젠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 무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이 곳에서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암 경험자라는 것 밖에 없어서 오늘도 암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지루하신 분은 그냥 이쯤에서 창을 닫으셔도 된다.


강의 시간에 가끔 '여러분이 앞으로  얼마밖에 못 산다면?'이라는 가정으로 글을 써서 발표해보게 하는 내용을 읽었다.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등의 발표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은 지극히 연약한 존재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면 그냥 공포스럽다.


눈물밖에 안 나고, 혼자 있고 싶고, 세상이 끝나는 듯한 절망감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수술을 위한 검사 중 펫시티를 찍으러 갔는데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 생각을 하면서 줄줄 울었다.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나와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휴지를 달라고 했더니 여기서 우는 사람이 많다며 직원이 친절하게 굴었다.


아무리 울어도 울 이유는 자꾸 생겼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고작 그 결과가 이건가 싶어 허탈해서 울고, 배를 가른다는데 얼마나 아플지 무서워서 울고, 위를 다 들어내고 나면 밥은 도대체 어떻게 먹는지 기가 차서 울고, 결과가 나쁘면 어째야 하나 막막해서 울고


옆 침대의 간병인이 딱한지 "그만 울어요. 암 걸렸다고 죽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하나도 위로가 안 되었다.


하루 종일 울고 나니 눈물이 말랐는지 기운도 없어서 그만 울었다.


수술 전 날밤에는 꼬박 새우면서  열한 장의 편지를 썼는데 나 자신에게 쓰고 부모님에게 쓰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쓰고 마지막엔 첫사랑에게 썼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안 나나 구구절절 작별의 말을 하고 내 인생을 뒤돌아보는 그런 내용이었다.


첫사랑에게는 고맙다고 썼지만 남편에게는 젊은 날 나를 힘들게 했던 일도 잊지 않고 짚어줬다.


차라리 잠이나 푹 자둘 걸 뭐한다고 팔 아프게 썼는지 수술 날 아침에 몸이 몹시 힘들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심오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브런치에서 그 속의 공통점을 찾자면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행복의 궁극 점을 찾기'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직장을  그만두는 걸로, 또는 시골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각자의 꿈을 이루고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


나는 그것을 암을 통해 이루었다.


예상치 못하는  교통사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의사로부터 전달받은 말 한 마디로 불평만 하던 월급쟁이에서 행복한 백수가 되었다.


나의 별다른 노력은 거기에 없지만 가족이나 부모님과 자매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무엇보다 신앙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죽음의 공포와 수술의 통증, 항암의 고통을 잊게 해 준 신앙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순조로운 회복은 힘들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니 당신이 얼마 뒤에 죽는다면? 이런 따위의 가정은 하지도 말라.


그냥 오늘 하루를 재미나고 충실하게 사는 걸로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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