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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29. 2020

조용한 시골 생활

지난겨울 동안 시골집에서 밥을 한 번도 안 해 먹었다. 밥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줄곧 이웃과 함께 외식하거나 초대되어 얻어먹거나 했기 때문이었다. 한두 끼 해 먹자고 시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겨우내 밥을 안 하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달 넘게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해서 먹는다. 금요일 저녁에 동네 입구의 왕마트에서 몇만 원어치 시장을 봐서 주말 여섯 끼를 집밥으로 먹는 중이다. 남편은 일품요리보다 백반으로 먹는 걸 좋아해서 국이나 찌개를 끓여 나물반찬과 차려 놓으면 즐거워하며 먹는다.


냉장고 속의 재료가 거의 떨어져 가는 일요일 저녁엔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시골에 와도 이웃과 왕래를 안 하고  둘이서 조용히 지내다가니 남편은 심심한지 요즘 밭과 정원을 열심히 돌보고 있다. 퇴비를 쏟아부어 두둑을 만들고 나무마다 전지를 하는 등 낮에는 주로 밖에서 일을 한다.


나는 힘든 밭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고 국수를 삶는 등 전에 없이 부지런하다. 이웃들과 만나서 식사하며 얘기하는 사교 시간이 줄고 나니 남는 건 시간뿐이라 밭을 새로 일구고 올해는 퇴비도 많이 구할 수 있어서 밑거름을 넉넉히 하는 마음이 흐뭇할 뿐이다.


남편은 요즘 일이 없고 수입이 줄어 다른 사람들처럼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어서 농사를 지어 맛있고 신선한 채소로 식탁을 차릴 생각에 재미로 하던 텃밭 농사가 이젠 자급자족하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어제는 옆 동네에 사는 이웃이 나물을 뜯어와서 주고 갔는데 나보다 더 곤궁한 처지인지 시골에서는 이렇게 채집 생활로 살면 된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농사지어서 반찬값을 아끼려는 나에게 나물을 캐서 먹으며 살면 된다니 새로운 생존 방식을 발견했다면서 웃었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셨던 분인데 어쩌다가 산과 들로 나물 캐러 다니게 되었는지 그래도 좋다며 둘이서 얼마나 감사하냐고 공감했다.


씀바귀와 달맞이 뿌리로 만든 김치를 주고 가서 그 씁쓸한 맛을 약이라 생각하고 먹었다. 옆 밭에선 쑥이 나기 시작해서 쑥국과 쑥버무리를 해서 먹었다. 지금부터는 땅에서 나는 온갖 것들을 가져다가 반찬을 할 수 있으니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나물로  밥상을 채우면 마음부터 건강해지는 것 같아 시골 사는 재미를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다.


입으로는 봄나물을 먹고 눈으로는 꽃을 보며 코로 향기를 맡으니 시골 생활은 봄이 최고!

튤립 속에 크로커스
쪽파
대파
수선화
새로 일군 밭에 가운데 두둑엔 감자를 심었다.
옆 밭의 쪽파

날씨가 따뜻해져서 할 일이 많다. 완두콩과 들깨를 심어야 하고 호박과 감자, 대파 씨는 이미 심었다. 상추씨도 뿌리고 얼갈이도 키워 김장 김치를 다 먹고나면 그걸로 김치를 담으려고 한다.


토마토, 옥수수, 땅콩, 오이, 가지, 고추를 심으려고 을 준비해뒀다. 많이 심어서 잘 키워야 하는데 비가 고르게 오고 한파가 없어야 농작물이 순조롭게 자랄 수 있다.

살구나무 꽃이 오늘 봄햇살에 터지기 시작한다.
망초나물과 이름 모를 나물을 무쳐 비빔밥으로 먹었는데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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