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미백 찰옥수수를 심었는데 옆의 두둑에 심은 이웃의 흑찰옥수수와 섞이는 바람에 얼룩이가 나왔다.
금방 따서 바로 삶아 먹으니 찰지고 단맛에 나도 모르게 '그래, 이 맛이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긴 장마에 사라진 작물은 대파이다. 잡초 속에서 그나마 살아있더니 다 녹아서 흔적이 없다. 장마가 지나고 텃밭의 울창한 잡초는 거의 포기하게 되었다. 이젠 서리가 내려 풀이 누렇게 사라지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땀과 모기에 시달리며 밭에서 풀과 씨름할 할 생각 따윈 해보지 않았다. 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라 지금도 구멍이 숭숭 뚫린 낡아빠진 옷을 걸치고 있다.
그런 나에게 해가 지면 선선해지는 시골의 여름밤은 축복이다. 열린 창으로 솔솔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밤새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이불을 끌어다 덮는 잠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서울의 아파트에서는 차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로 몸살을 앓으며 어서 잠들어 소음에서 벗어나려고 눈을 질끈 감는 날이 대부분이다.
혼자 있으면 식사 준비가 귀찮아서 옥수수로 끼니를 대신한다. 아침에 따서 삶아 하루 종일 밥 대신 계속 옥수수를 먹었더니 이젠 어지간하다.
복숭아는 동네에서 농사짓는 분에게 샀다. 장마 끝이라 맛이 없다고 그냥 주시려는 걸 만 원을 드리니 몇 개 더 주셨다.
좀 싱겁긴 해도 아침마다 경운기를 타고 우리 집 앞을 탈탈거리며 두 내외분이 복숭아 밭에 가시는 걸 보며 봄을 보냈기에 감사하게 먹는다.
토마토가 낮 동안 더 익으면 저녁에 따려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해 질 무렵이 되자 나보다 한 발 빠른 물까치가 빨갛게 익은 토마토 세 개를 벌써 반쯤 쪼아서 먹고 있었다.
부랴부랴 쫓아갔는데 가까이 가도록 날아가지도 않고 버틴다. 분하지만 부지런하고 눈썰미 좋은 새에게 지고 말았다.
남아 있는 성한 토마토에 양파망을 씌워 쪼을 수 없게 해 놨다. 장마로 잎이 다 녹아서 달려있는 몇 개의 토마토가 전부이니 서로에게 양보란 없다.
오후에 소나기처럼 요란하게 비가 내렸다. 미리 빨래를 걷으려고 뒷마당으로 가는데 어디서 고운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두리번거리니 뒷집의 남아공에서 온 이웃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금발 머리를 짧게 잘라 전보다 훨씬 앳되게 보이지만 내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한국말은 못 한다.
마음으로는 혼자 지내기가 어떤지, 뭘 하며 보내는지 궁금하지만 몇 마디 인사가 전부인 채 작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쁘고 지적인 그녀에게 말을 못 하니 그 역시 분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고 지내는 요즘 조회수가 오르고 구독자까지 늘어서 이유가 궁금했는데 아마 시골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고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앞집이 팔린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십억에 내놓은 지 일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드디어 정원이 넓고 벽돌이 근사한 앞집에 새 주인이 들어오게 되었다. 부디 이번 주인은 문을 걸지 않고 이웃과 소통하는 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