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와서 많은 야생화를 알게 되었다. 금낭화, 앵초, 큰꽃으아리 등 내가 몰랐던 꽃이 동네 길가나 산 길 곳곳에 피어 있었다. 큰꿩의비름은 골목길의 돌담 틈에서 발견했다.
그곳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촬영했던 돌담 근처였다. 우리 동네는 돌이 많은 곳이라 아기자기한 돌담이 있어 골목이 예쁜 편이다.
꽃잎이 보랏빛 별처럼 생긴 큰꿩의비름
조그만 꽃이 모여 주먹만 한 송이로 피는데 잎도 둥글어 화려하면서 청초한 모습이다. 어쩌면 저리도 예쁜지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내년부터는 꽃을 본격적으로 키워보고 싶어 졌다. 농사는 손에 익어 능숙해졌고 이젠 꽃밭에 집중해서 예쁜 꽃을 즐기고 싶다.
월동이 되는 산수국
산수국의 자태도 이처럼 아름답다. 꽃은 다 예쁘지만 조그만 내 마당에 피는 꽃은 훨씬 더 예쁘다. 심고 물 주면서 애타게 기다리는 수고가 더해져 봉오리가 맺힐 때부터 설레기 시작해 마침내 꽃잎이 열리면 세상 기쁘다.
오이나 가지는 몇 년 동안 실컷 따먹었고 옥수수와 땅콩도 물리도록 먹었으니 앞으로는 눈으로 즐기고 향기로 취하는 꽃에다가 시골 생활의 즐거움을 맡기고 싶다.
그러려면 뒷마당에 꾸며놓은 꽃밭을 집 앞으로 옮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뒷마당에는 빨랫줄이 있어서 꽃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웃의 의견에 따라 앞마당의 잔디를 걷어내고 꽃들을 옮겨 심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른 봄의 뒷마당 화단 풍경
손바닥만 한 꽃밭에 무슨 잡초가 그리도 올라오는지 지금은 풀 천지가 되어 엉망인 채로 내버려 뒀다. 모기가 덤벼서 잠깐이라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년 봄에 앞마당에서 피는 꽃을 느긋하게 바라보려면 삽과 호미의 노동이 필요하다.
7월이 되면 만날 수 있는 상사화
잠깐 피었다 지는 꽃이라서 더 애틋하고 예쁜 걸까? 긴 장마에 상사화는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시들었다. 가장 예쁠 때 사진을 찍어두지 않으면 며칠 뒤에 다시 가서 볼 땐 이미 꽃잎은 다 져서 아쉬울 때가 많다. 시골에 눌러살면 아침저녁으로 잡초를 뽑아주고 물도 주며 애지중지 잘 기를텐테 모든 탓을 주말 집이라는 핑계로 넘긴다. 부지런한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와도 정원을 잘 가꾸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해서 항상 어수선하다.
사실 올여름은 벌레가 너무 많아져서 시골집에서 지내기가 좀 힘들었다. 노래기가 벽에 잔뜩 붙어 있고 나무마다 애벌레가 기어 다니며 나뭇잎을 모조리 갉아먹어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습기와 벌레는 아주 좋은 궁합이라 어디를 둘러봐도 벌레 천지이니 마당 생활을 거의 포기하며 살았다. 시골 재미를 몇 년 보고 나서 도시로 돌아가는 이웃이 많은 걸 이제는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겨울의 시골은 유난히 춥고 여름은 습기로 덥고 벌레와 잡초는 귀찮을 정도로 많아 인내심이 없으면 계속 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는 이제 와서 시골 살이의 불평을 꽃으로 덮어보려 한다.
땅콩 농사는 흉작이다. 땅콩 두둑 아래에 두더지 구멍이 여러 개 나있어서 땅콩이 별로 안 달려 있다. 심을 땐 새가 쪼아놓더니 거둘 땐 두더지가 먼저 가져가 버렸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조금씩 캐어서 먹는 맛이 고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