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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건초염

시골 생활하면서 얻는 것과 잃는 것

by 화이트

요즘 같은 시절이 올 줄 모르고 시골 주말 생활을 시작했다. 집을 지은 지 벌써 오 년이 지나서 내년 봄에는 집 전체의 페인트칠을 해야겠다고 남편과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이젠 농사와 마당일에 제법 익숙해져 초보를 벗어나 경험을 갖춘 시골 사람이 되었다. 시골집에 살면서 지식과 요령이 쌓이게 되니 남편이 은퇴를 하게 되면 좀 더 시골로 내려가 허름한 농가 주택을 고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서까래와 툇마루가 있고 아궁이에 불 때는 집이 어찌나 정감 있고 좋아 보이는지 요즘은 온통 그런 집만 눈에 들어온다. 시골집을 짓기까지 반대하던 남편이 어쩐 일로 이제는 건축이 자신의 분야이니 낡은 집을 고쳐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마음은 더욱 험난한 시골 살이로 굳어졌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작년 여름에 무릎 정도까지 자란 잡초를 힘으로 잡아 뽑다가 왼 손목의 힘줄을 다쳤다. 건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힘줄이나 인대 등은 혈관이 없어서 잘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손목을 안 써야 재발하지 않는다면서 동네의 정형외과 의사는 시골 생활을 접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세수를 하려고 엄지 손가락을 들면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 주사를 두 번이나 맞아도 몇 달이 지나 다시 통증은 시작되었다.


체외충격파 치료를 세 번이나 받았지만 이미 고질병으로 오래되어 아무 효과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주사를 선택했으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일상생활을 하려니 왼손이 거들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데다 칼질을 왼손으로 하는 나는 겨울이면 무채 써는 일이 잦다. 입이 유난히 짧은 남편은 채칼보다 손으로 써는 무를 선호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무 생채나물도 해야 하고 콩나물과 무를 볶아 겨우내 즐겨 먹는데 요리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다니 울적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시골 살이를 허약한 남편과 부실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근육은 둘째치고 관절과 인대 등 노동에 필수적인 부분에 치명상을 입으면 농사일과 마당일을 하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내년 봄에는 텃밭에 조밀하게 자란 화살나무를 뽑아서 다른 곳에 심어야 하는데 뿌리가 얽혀있는 나무를 캐서 옮기는 일은 상당한 중노동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은 벽돌로 가장자리를 쌓아 단정한 틀밭으로 만들고 싶고 잔디를 캐내고 화단을 좀 더 넓혔으면 하나 그 역시 만만치 않은 노동을 해야 한다.


몸은 말을 안 듣고 하고 싶은 것은 많아지니 시골 생활은 이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맞다. 집에 뭔가를 새로 고쳐야 하는 일이 계속되는 주택살이는 그래서 해마다 공사 중이다. 내가 아는 이웃은 살던 부엌의 벽을 깨서 뒤뜰로 문을 낸 집도 있다. 원래는 거실과 대면형 주방이었으나 현관문을 열자 바로 보이는 부엌이 싫어서 뒤편으로 옮기다 보니 동선에 불편한 곳이 생기고 그래서 이웃은 몇 년째 자기 집은 공사 중이라고 했다.


시골집이 좋기로야 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을까만 이 좋은 것을 누리려면 대가가 혹독하다. 두 집 살림에 필요한 비용을 대느라 통장은 늘 허전하고 무엇보다 관절과 힘줄과 인대를 바쳐야만 그림 같은 마당과 집을 보유할 수 있다. 물론 돈이 많으면 마당을 관리해 줄 대행업체를 고용하면 된다. 혹은 태평농법이나 자연주의로 잡초가 무성한 밭과 마당을 견딜 수 있는 심성의 소유자라면 문제 될 것은 없다. 꼭 나같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이 문제다. 잡초와 작물을 적당히 어우러져 키우는 방법 같은 건 알지 못한다.


통증이 시작된 손목은 새로운 한의원에서 약침을 맞기로 했다. 손목 때문에 일 년 반 동안 병원을 전전했기에 좋은 의사를 구분할 정도의 분별력이 생겨서 친절하고 따스한 한의사에게 내 손목을 맡겨보기로 했다. 기왕이면 젊고 잘 생겼다는 딸의 추천으로 한의원에 갈 땐 있는 옷 중에서 예쁜 걸로 입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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