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 2촌'의 두 집 살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날은 일주일의 마지막, 양평에서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이다. 요즘은 시골 이웃의 딸기 농장에서 딸기를 잔뜩 사와 짐을 메고 걸고 오는데 아파트 문을 열면 엉망인 집 꼴이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현관에는 택배 박스와 치킨 상자가 어지러이 쌓여 있고 집안으로 발을 디밀면 욕실 앞에 둔 빨래 바구니가 넘치고 쓰레기통도 가득이다. 널고 갔던 빨래는 거실의 건조대에 그대로 있다. 부엌엔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플라스틱 용기와 뚜껑도 열지 않은 소스 통들, 딸들이 설거지를 한다고 했는데 어설픈 뒷마무리까지 나의 손을 기다리는 집안 꼴은 분노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리하여 미친 여자가 널을 뛰는 형상으로 시골에서 가져온 물건들의 정리부터 온 집안을 휩쓸면서 치우는데 식구들은 각자 몸을 최대한 숨기며 내 화를 돋우는 그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그 시간을 견디면 순식간에 정돈된 집에서 쾌적한 의식주를 누릴 수 있으니 식구들에게 익숙해져 버린 습관이다. 이른바 '양평 증후군'으로 어쩔 수 없는 주부의 고질병이라 고쳐지지도 않고 고칠 생각도 없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손걸레질까지 해야 깨끗해진 집안에서 비로소 쉴 수 있는 주부의 숙명에 나도 어쩔 수 없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손목의 통증이 낫지 않자 더 이상 푸닥거리를 할 수 없게 되어 방법을 찾다 보니 친정집에 있는 로봇청소기가 생각이 났다. 기계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위해 여동생이 사다 드린 로봇청소기가 이젠 쓰는 사람 없이 거실에 놓여 있어서 지난 설에 가져왔다. 엄마는 유선 청소기도 잘 안 쓰신다고 했다.
세상에! 물걸레까지 끼운 로봇청소기가 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주니 한결 수월한 정도가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수고의 절반이 덜어진 기분이다. 알아서 청소해주는 로봇에게 바닥 청소를 맡긴 후에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능률이 훨씬 오를 뿐 아니라 나의 분노 지수가 쑤욱 내려가버려서 시골에만 다녀오면 시작되는 '양평 증후군'이 몇 년 만에 완치가 되었다!
기계를 믿지 못하고 손걸레질이 최고라던 내가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가졌는지 딸들이 지적하지 않아도 인정한다. 먼지통 속에 소복소복 쌓인 회색의 먼지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아 아침저녁으로 로봇 청소기를 돌린다. 수고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청소가 이렇게나 수월하다니 놀랍다. 그뿐 아니라 집안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의식주를 간소하게 해결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반찬도 한 두 가지 정도만 새로 하고 지저분하게 대충 사는 걸 좀 더 대충 살기로 한다. 기계에 의지 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간소한 삶을 지향한다고 늘 강조했지만 로봇청소기 앞에서 털썩, 무릎이 아니라 손목을 꺾었다.
설이 지나자 주변에서 언제 남쪽으로 내려가냐는 질문이 많았다. 다음 달에 환갑인 남편, 직장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독립은 안 하는 두 딸, 자꾸만 망가지는 건강 문제 등이 겹쳐 나에게 혼란의 시기가 잠시 왔었다.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고민했는데 이제 안정이 된 것 같다. 몸이 고장 나서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된 일상들이 마음을 내려놓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손목의 통증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턱관절을 치료하는 중이라 언제가 될지 정해지진 않았고 어찌할 수 없게 들쑥날쑥하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