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잘 지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내 나이쯤의 오륙십 대 주부들이 유독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도 독립하지 않고 있는 아이들 뒷바라지와 은퇴한 남편이 다 같이 한 집에 살고 있는 데다 주로 가벼운 소모임을 통해 여가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모든 활동을 중지한 채 집콕 증후군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몇 년 사이에 푹 늙어버린 이웃들의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일상이 얼마나 심신을 해치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통해 절절하게 깨닫는 중이다. 겨울 동안 미세먼지와 한파로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이웃들과 오전 커피를 즐기던 것도 잠시, 역병이 창궐하니 누가 누구에게 옮길지 몰라 그나마 공원 산책을 함께 하던 것도 그만두었다. 저녁 시간에 혼자 걷는 일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그렇게 온종일 집에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렸다.
마침내 차갑던 바람이 상쾌해지고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봄이 되었다. 주말에 가면 냉기에 떨던 시골집의 온도가 이젠 보일러를 외출에 켜놓지 않아도 동파 걱정이 없이 금방 따뜻해졌다. 갑갑한 아파트에 갇혀 있던 게 너무나 힘들었기에 시골집에 가서는 평상에 전기 매트를 켜고 누워 이불을 덮고 저녁 어스름 나절을 보냈다. 맑은 시골 공기가 코 끝으로 불어오니 숨이 쉬어지는 것 같고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보이는 건 넓은 하늘과 연둣빛이 올라오는 산과 나무들이니 겨울 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비로소 위로받는 것 같았다.
숨은 쉬었으니 이제 밭일을 해야 한다. 완두콩은 지난주에 심었고 이번 주는 감자 심을 곳을 일구어 퇴비를 섞은 뒤 작년에 먹고 남은 감자를 심고 왔다. 비가 내렸기에 보슬보슬한 흙을 만지면서 노동을 하니 그저 즐거웠다. 밭을 둘러싼 화살나무가 너무 자랐기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무를 솎아 캐내어 미당의 차폐용으로 옮겨 심었다. 촘촘하게 심은 나무를 캐는 건 무척 힘든 일이지만 손잡이가 긴 전지가위를 새로 장만했기에 밑으로 굵게 뻗은 뿌리를 찾아 자르는 일이 쉬웠다.
두 그루 중 얼어 죽은 감나무의 뿌리를 캐내고 그 자리엔 뒤꼍의 라일락을 옮겨 심었다. 빨랫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라일락을 안방 창문 앞에 심었으니 봄밤에 창을 열고 달콤한 라일락 향기에 한껏 취할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했다.
왼쪽은 감나무 오른쪽이 라일락
튤립은 꽃망울이 맺혀 있는 게 보인다. 수선화, 앵초, 상사화, 매발톱, 접시꽃의 새싹들이 꽃밭 사이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꽃이 피기까지 지금부터 설레는 기다림의 시작이다.
부지런해야 살 수 있는 시골집이라서 게으르기만 하던 남편과 나도 철 따라 해야 할 일을 이젠 찾아서 척척 해낸다. 두엄자리를 흙으로 메꾸고 호박이나 수세미 등을 심을 건데 그 일은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다; 잔디보다 먼저 올라오는 잡초를 뽑느라 시간을 많이 썼더니 이틀 동안 계획한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었다.
울적한 마음으로 보냈던 길고 지루한 겨울이었다. 봄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시골집은 4월부터 11월까지는 갈 때마다 할 일이 있고 꽃과 작물이 자라는 축제 같은 날들이다. 바람결이 다르고 조용한 적막이 도시와는 천지 차이인 시골의 풍경이 지친 마음에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시골집에 오면 밭일과 마당일을 하는 것이 소일거리가 되어 심심하지도 않고 적당한 노동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그 일을 하고 나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니 내 집을 가꾸는 보람이 더없이 크다. 남편은 나무를 다듬는 전지 작업을 무척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전지가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자른다. 대추, 살구, 자두, 체리, 사과나무를 사람 키보다 더 자라지 않도록 다듬고 소나무, 주목나무, 꽃나무를 잘라내는 작업이 오래도록 계속된다. 바람과 햇볕이 잘 통하도록 가지들을 솎아내고 나면 마치 이발한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시원한 눈 맛이 있다.
시골 생활이 좋다고 시작한 글쓰기인데 몇 년 지나고 익숙해지자 싫은 것들도 생기긴 했다. 잡초와 벌레가 징글징글하고 이웃집 개는 늘 우리 집 밭에 똥을 싸고 아파트보다 동선이 불편한 시골집에 불만이 생기는 시점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골집이 아니면 견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