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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밭 만들기

쿠바식 텃밭이라고도 하지요.

by 화이트

꼼꼼한 남편과 덜렁이인 내가 어쩌다 생긴 벽돌 때문에 반듯반듯한 틀밭을 만드려고 했을 때부터 이미 일은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가지런한 틀밭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모내기할 때처럼 줄을 띄워서 수평과 간격을 일정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성격이 급하기만 한 나는 오늘 안으로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벽돌을 세워나갔다.


남편은 '뱀이 기어가듯 구불거리게' 만들었다고 조금 삐뚤게 된 나의 틀밭을 비난했지만 매끈한 남편의 일솜씨를 알기에 너그럽게 껄껄 웃어넘겼다. 애초에 틀밭을 만들기로 한 이유가 해마다 봄이면 밭을 뒤집느라 삽질을 하는 남편이 힘들어 보여서인데 마치 남편은 나를 위해 만들어주는 것처럼 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틀밭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마다 봄이면 밭을 갈아야 하는데 관리기 없이 삽과 쇠스랑으로 흙을 부수고 퇴비를 섞는 일이 텃밭일 중에서 가장 고되고 힘들다. 틀밭을 하면 무경운으로 밭을 갈지 않고 호미질로 농사를 할 수 있고 퇴비나 흙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잡초 관리도 수월할 뿐 아니라 보기에도 단정해서 예쁘다.


하지만 밭을 뒤집어서 흙을 고르고 간격 맞춰서 벽돌을 나란히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벽돌을 옮기려니 무겁고 틀밭의 네 귀퉁이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자투리 벽돌로 대충 막아놨는데 많이 엉성했다. 남편은 건축 현장에서 벽돌 쌓는 사람들을 볼 땐 수월해 보이더니 자신이 해보니까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 나처럼 초보인 사람은 오죽 정신이 없을까마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성격답게 후딱후딱 해나갔다. 아마 남편 혼자서 했다면 틀밭 하나밖에 못 만들었을 텐데 내가 거들어서 세 개나 만들었다고 남편도 인정했다.


몰라보게 예뻐진 틀밭을 보니 얼른 씨를 뿌리고 싶어서 상추와 얼갈이 씨앗을 뿌려놓았다. 주말에 나머지 틀밭 두 개를 완성하고 나면 고추와 가지, 토마토 등의 모종을 사 와서 심는 것으로 올해 농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옆 밭에는 땅콩을 두 고랑 심어 놓았고 옥수수도 곧 심을 예정이다. 감자는 며칠 전에 내린 비를 맞으며 조그맣게 싹이 올라와 있었다.


요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 액수가 너무 많이 나와 깜짝 놀라는 중이라 재미로 하는 농사가 이젠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정성껏 키워 바로 따서 먹는 농작물이 남편과 나의 건강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고 무럭무럭 자라는 작물을 보면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


남편은 호미의 손잡이로 벽돌을 콩콩 치기도 하면서 수평과 줄을 맞추느라 애를 쓴 나머지 저녁이 되자 지친 표정으로 일찍 자러 들어갔다. 나는 뭐든 대충 하는 성격이라 별로 힘들 것도 없이 적당한 피로감으로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지난주에 갑자기 더운 기온으로 꽃들이 활짝 피고 울타리로 심은 화살나무 순도 예고도 없이 돋아났다. '부지런한 며느리도 세 번 밖에 못 따는' 홋잎 나물을 나는 네 번이나 따서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 화살나무순이 활짝 펴버리기 전에 따야 하는 홋잎 나물은 일주일 안에 채취해야 해서 날마다 따느라 바빴다. 살짝 데쳐 시금치나물처럼 무쳐놓으면 비빔밥으로 먹을 때 최고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벚꽃잎이 바람에 떨어져 마당에 흩날리고 겨울 동안 숨죽였던 예쁜 꽃들이 하나씩 피어나고 있는 아름다운 시절이 돌아왔다. 시골 생활이 또다시 시작되려고 하는데 아직 내 마음은 틀밭처럼 반듯하지도, 봄꽃처럼 화사하지도 않으니 그저 아주 조금 부지런해졌다.


틀밭의 바깥은 낙엽을 덮어서 풀이 안나게 했다.


도르르 말려 있을 때 따야하는 홋잎나물
뱀 기어가듯 대충 만든 내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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