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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심심 살이

심심해서 마당 일을 합니다.

by 화이트

봄이 되자 시골집에 할 일이 늘어날 참인데 회사를 다니는 딸들 중 하나가 코로나에 걸렸다. 암 경험자인 내가 가장 먼저 격리를 해야 한다고 가족들은 나에게 시골에 가 있기를 권했다. 독감처럼 아프다는 딸도, 남은 식구들도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골에 와서 일주일이 지나 열흘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오는 날엔 같이 텃밭도 일구고 식사 준비도 해야 해서 한가할 짬이 없었지만 혼자 지내려니 봄날이 여간 길지 않았다.


주말이 지나고 남편이 출근하러 서울로 가고 나니 또 혼자의 시간이 되었다. 빌려온 두 권의 책은 다 읽어버렸고 영화도 실컷 보고 나니 할 일이 없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오전엔 잔디밭을 맴맴 돌며 풀을 뽑았다. 잔디밭의 가장자리엔 망초와 민들레, 제비꽃, 좀씀바귀 등 온갖 잡초가 자라 있어서 겨울을 빼고 나면 두고두고 수시로 뽑아내야 한다. 씨앗이 날아다니다가 벽이나 돌담에 걸려서 가장자리부터 자라나고 그걸 제 때 뽑지 않고 내버려 두면 점점 마당 안 쪽으로 밀고 들어오니 시골에 살면 '콩 심은 데 풀나고 팥 심은 데 풀 난다.'는 새로운 속담을 알게 된다. 잔디가 심어져 있는 마당도 이럴진대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맨 땅인 텃밭은 호미질을 하지 않으면 마냥 풀밭이다.


시골집은 이사 가는 날까지 공사한다는 말이 있더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해마다 뭔가 바꾸고 새로 꾸밀 일이 생긴다. 뒷마당에 있는 꽃밭의 폭이 약간 깊어서 풀이 자라는 여름엔 안쪽까지 팔이 안 닿아 풀 반 꽃 반인 상태로 지냈다. 시간이 넘치는 오후에는 꽃밭에 물을 주다가 돌을 주워 꽃마다 경계를 만들어 보았다. 슬슬 재미가 붙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긴 벽돌을 가져와 디딤돌 삼아 경계를 만들고 보니 꽃마다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시꽃, 나리꽃, 꽃범의 꼬리, 작약, 바람꽃, 앵초, 매발톱, 목수국, 상사화, 수선화, 둥굴레, 말발도리, 무스카리, 꽃양귀비의 구역을 나눠서 각각의 자리를 만들어 옮겨 주었다. 쓰고 보니 엄청 많은 것 같아도 심어 놓은 걸 보면 얼마 안 된다. 그래도 훨씬 뭔가 정돈되어 보여서 앞으로 잡초를 뽑기가 수월할 것 같다. 꽃밭 역시 텃밭처럼 풀을 항상 관리해야만 꽃이 눈에 보이지, 뒷마당의 꽃밭은 장마가 지나면 그냥 풀밭이었다.


집을 짓고 여섯 번의 봄을 맞이하고도 아직 시행착오를 거듭할 뿐, 제대로 완성된 모습을 기대하기란 까마득하다. 구석진 곳의 잡초 집중 지역은 늘 그냥 방치 상태이다. 마음 같아선 시멘트로 모두 덮어버리고 싶다. 농가주택의 마당이 왜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지는 시골에서 몇 년만 살아보면 바로 부러워진다.


시골 사람들은 겨울을 더 좋아한다. 여름엔 동물처럼 자라며 키를 넘는 잡초가 제일 무섭고 집 밖만 나가면 달려드는 벌레들이 그다음으로 무섭다. 자고 나면 뽑아야 하는 풀은 손가락과 손목 그리고 무릎 관절에 해롭다. 쐐기, 먹파리, 벌, 지네 등의 벌레에게 물리면 상당히 아프고 오래 가렵다.


그래도 시골에 봄이 오니 시장을 가지 않아도 먹을 것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뒷마당에 심어놓은 머위가 아기 손바닥만 하게 자라서 나물로 무쳐 먹고 홋잎 나물도 따서 먹고 겨우내 자란 부추를 처음 잘라 남에겐 안 준다는 초벌부추로 겉절이를 하고 쑥국을 끓이면 혀가 입 안에서 깨금을 뛰는 봄날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지금은 취나물이 뜯을 만큼 자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왜 취나물이 나물 중의 으뜸인지 작년에 처음 길러서 먹어보고 알았다. 향이 끝내준다.


습한 곳에서 잘 자라는 머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한 시골의 한낮은 지루하고 심심하다. 그래서일까? 삼 년에서 오 년이 지나면 이웃들은 서울로 돌아가 버린다. 나 역시 오 년이 지나자 새로울 것도, 설레는 것도 없이 하던 대로 농사 준비를 시작하지만 언제까지 두 집 생활을 계속할지 계속 생각을 하고 있다. 좋은 것을 누리기엔 해야 할 일도 많고 몸도 고달프다. 풀 뽑다가 든 골병이란, 말 그대로 관절에 이상이 생겨 잘 낫지도 않고 애를 먹이니 은퇴 후에 시골에 온다는 사람에겐 너무 늦다고 항상 말한다. 전원주택이 자리 집으려면 수년이 걸리는데 그동안의 노동이 안 하던 사람에겐 쉽지 않기 때문이다. 뜻이 있다면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는 편이 유리하다.


오늘도 심심해서 쌓아 두기만 하는 창고 정리를 해볼 생각인데 시원한 오후가 되면 슬슬 나갈 예정이다. 시골살이는 아침저녁으로는 무척 바빠서 커피 마시며 먼산 쳐다볼 시간이 없고 대낮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쨍한 마당을 하염없이 내다보고만 있다. 참새가 가끔 와서 잔디밭에 먹을 것을 찾고 있을 뿐이다.


주말 동안 완성한 틀밭


노지월동이 되는 꽃만 심어져 있다.
골담초와 매발톱
작약과 보랏빛 앵초
봄은 튤립을 가진 자의 것이다.
꽃잔디와 산앵두꽃
해마다 개체수가 늘어나는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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