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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의 함정

시골에서는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

by 화이트

시골 사람들의 식생활이 무척 건강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 물론 텃밭에서 키운 온갖 채소와 나물로 건강한 시골 밥상을 꾸려나갈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지런한 사람들 이야기이다. 이웃들을 보면 농사일이 바쁘고 힘이 들어서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도 있고 해가 지면 바깥 활동을 못 하게 되어 술을 마시며 밤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나로 말하자면 혼자서 시골에 있는 경우에는 따로 밥을 해서 차려 먹기보다 식빵을 구워 먹거나 더 심할 때는 과자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다. 도시 같으면 집 밖만 나서도 식당이 널렸으니 한 그릇 사 먹기도 쉬우련만 시골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식생활은 점점 나빠져갔다. 특히 코로나로 외출 자체가 힘든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운동도 못 하게 되었고 결국 얼마 전의 건강검진에서 당뇨 전 단계로 진단이 나왔다.


당화혈색소라는 생소한 용어를 이번에 처음 들었다. 석 달마다 생성되는 적혈구 색소의 평균값이라는데 공복 혈당이나 식후 혈당의 평균치라고 보면 된다. 아직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나 주의 단계의 최고 수치였기에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당뇨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식이와 운동이라는 두 가지 처방이 당연한 결론이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유산소와 근력 운동의 적절한 실천이 해답이었다. 음식 간도 최소한으로 해서 자연 상태에 가깝게 먹어야 한다. 다시 말해 건강식이다.


어찌 보면 쉽고도 당연한 방법이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이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밥 먹는 순서도 채소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먹어야 혈당이 천천히 오르는데 비만인 경우엔 칼로리를 대폭 낮추면 되지만 나처럼 마른 당뇨인 경우에는 잘 먹어야 하고 특히 하체 근육을 키워야 해서 유산소보다는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 근육이 당을 많이 소모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운동이라곤 공원에서 걷기 밖에 안 했는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파트 계단 오르기부터 시작해서 다리에 힘을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올라갈 엄두가 안 났지만 2주 가까이 오르다 보니 이제는 한 번에 16층까지 쉬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우리 아파트의 옥상까지가 16층이다. 하지만 50층은 올라야 한다고 해서 옆 라인의 계단까지 오를 예정이다. 오전 운동으로는 요가와 점핑 수업을 번갈아 하면서 몸에 활력을 주고 있다. 당뇨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운동이지만 어느 정도 체력이 생기면 헬스클럽에서 기구를 이용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위가 없기 때문에 식탐도 그다지 없어서 샐러드-단백질-현미잡곡밥이라는 극단적인 식이 조절에도 크게 어렵지는 않다. 과자 따위나 주워 담던 마트 바구니에는 가지 브로콜리 오이 방울토마토 그린키위 버섯이 수북수북 쌓이고 생선과 소고기가 날마다 담긴다. 끼니때가 되면 샐러드를 만들고 단백질 요리를 하며 현미 잡곡밥을 천천히 먹는 내 모습이 나조차도 무척 낯설다. 남편은 나의 식사가 마치 도를 닦는 것 같다고 했다. 식후엔 오른 혈당을 낮추기 위해 실내 자전거를 삼사십 분씩 탄다.


적어도 일 년 동안 바꾼 식습관과 운동 생활로 살아야 한다는데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리다가는 얼마 못 가서 탈진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생이 <모 아니면 도>로 살아온 나는 느리게, 천천히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당이 치솟기 때문에 이렇게 신경을 쓰면 오히려 건강에 나쁘다. 깔깔 웃고 즐겁게 생활해야 몸에 훨씬 이롭다는 걸 혈당 수치가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암 경험자로서 너무나 건강에 무지하고 상식이 없었다는 걸 반성할 뿐 아니라 (위가 없어서 적게 먹으니 성인병에 대해서 방심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에 나같이 미련한 사람은 이렇게 꼭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뜨거운 줄 안다.


건강하게 살려고 시작한 시골 생활이 생각하지도 않게 이런 결과를 가져와서 무척 유감이지만 누굴 탓하랴, 게으르고 무식한 자신의 탓인걸! 열심히 노력하고 관리해서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글을 쓰게 되길 바라며 지난봄부터 심하게 앓던 갱년기 우울증은 이 덕분으로 한 방에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바뀐 식이와 운동으로 심심할 새 없이 하루하루가 바쁘기도 하고 석 달 뒤의 검사에서 좋은 수치를 받기 위한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물론 길게 보면 바람직한 식생활과 생활 속 운동의 일상화로 건강하게 여명을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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