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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한 방으로 안 통한다.

혈당 관리도 꾸준히 해야만 좋아진다.

by 화이트

드디어 의사로부터 받은 시한인 6개월이 지났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얼마가 나올지 채혈 후 시험 결과를 받아보는 심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동네 내과 의사는 종이에 숫자를 적어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당화혈색소는 6.5에서 6.1로 내려갔다.


하지만 지난 반년 동안 내가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수치였다. 정상 수치인 5.6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5%의 범위 안으로 떨어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내 눈빛에서 실망한 걸 본 의사는 약 한 알 줄인 셈이니 잘 해온 것이라고 위로했다. 운동을 열심히 했나 보다는 말에 울컥했지만 표시 내지 않고 잘 참았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당화혈이 6.5부터 약 한 알이고 0.5%씩 올라갈 때마다 한 알씩 추가된다고 했다.


나에게 여전히 경계 단계임을 확인시키며 6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하면서 위전절제한 사람에게는 체내 합성이 안 되는 비타민 B12 수치도 그때 함께 확인해서 주사 시기를 조정하면 된다고 했다.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터덜터덜 걸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건강식으로 시간을 지켜 절제하면서 먹었고 식사 후마다 빠뜨리지 않고 걷거나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혈당 관리를 해왔기에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노력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노오력해야 되는 것임을 간과했다. 췌장이 노화되고 근육도 점점 약해지는 나이가 되어서 반년 동안의 노력으로는 혈당이 안정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해마다 검진을 해왔지만 공복 혈당이 100 이하로 늘 정상 수치였기에 혈당에 대한 주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초, 비타민 B12 수치 때문에 추가한 혈액 검사에서 당화혈색소라는 단어를 의사로부터 처음 들었다. 가족력이 있고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며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던 나에게 어쩌면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였는데 몸에 이상이 오기 전까지는 전혀 조심을 하지 않았다.


진단받았을 즈음, 손발이 조금씩 저리고 소변에 거품이 나오며 눈이 침침해지고 무기력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그런 증상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고구마를 조금만 먹어도 몸에 흡수되지 못한 포도당이 소변 거품으로 나와서 맛있는 꿀고구마를 참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힘들다. 식사 후 두세 시간이 지나면 출출해지는데 간식을 마음 놓고 먹지 못하고 아몬드나 씹고 있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식이나 운동이 생활에 완전히 자리 잡아서 불편한 점은 없다.


든든한 우리 집 첫째 딸이 하고 있는 '자연식물식'에 비하면 '당뇨식'은 그저 애교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육식을 거부하고 가공 식품을 멀리 하며 자연 상태에 가까운 식물식을 하는 첫째는 점점 더 날씬해지고 예뻐져서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시다. 마음도 순해져서 착하고 살가운 딸을 새로 하나 얻은 기분이다. 첫째는 요가와 테니스, 러닝을 하며 프리다이빙 자격증까지 따는 운동 마니아이다. 거기다 자연식물식을 하니 머지않아 우리 집에는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곧 등장할 것 같다.


의사는 나에게 밀고 당기는 근력 운동을 하고 식물성 말고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라고 했다. 두부를 아무리 먹어 봐야 근육 만드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했지만 현미 채식을 하는 우리 집에서는 좀 어려운 일이라 주말에 시골집에 가면 더욱 열심히 동물성 식품을 먹는 걸로 타협을 하는 수밖에 없다. 생선은 첫째가 좋아했던 음식이 아니라서 주중에 집에서 자주 먹는 편이다.


결과를 받고 며칠 동안 좀 울적했지만 생각해보면 위암 수술 후에 항암도 일 년 동안 했는데 급한 성격대로 쇠뿔을 당김에 뽑으려 한 자신의 조급함을 나무라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건강을 잃는 것도 서서히 생활의 습관들이 쌓여서 나빠진 것처럼 좋아지는 것도 꾸준한 노력과 실천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인터넷 기사에서 본 것처럼 국가 검진에 당화혈색소 항목을 추가해서 나처럼 공복 혈당만 믿고 있다가 뒤늦게 외양간 고치느라 분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을 건강할 때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펄펄 뛰며 난리법석인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위를 잃고도 고치지 못한 식습관과 운동을 당뇨 앞에서 완전히 리모델링한 건 길게 봤을 때 잘된 일이다.


같은 당뇨 전 단계인 지인에게 전화해서 얘기하던 중, 지인의 부모님도 당뇨약을 드시는데 시골에서 순을 먹으려고 고구마를 심었다가 남는 고구마를 처치하기 위해 말랭이를 만들어서 드셨다고 한다. 군고구마도 해로운데 말랭이는 당도가 훨씬 올라가기에 당뇨인에겐 위험한 음식이다. 그래서 지인의 어머니는 한 알 드시던 약이 두 알로 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울하시니 좀 있다가 연락하라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치료에는 식이가 50% 운동이 30% 나머지 20%가 약이라고 한다. 나는 햇고구마 찐 것이 맛있어서 그걸 조금(작은 것 반 개 정도) 먹고 나면 원래 걷는 걸음에서 2000보를 더 걷곤 했다. 그래도 여지없이 소변에서 거품이 나오는 걸 볼 때마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당뇨 카페에서 읽은 내용에는 곶감 하나 먹고 혈당이 치솟아 한 시간 동안 실내 자전거를 탔다는 슬픈 후기가 있었다.


정 달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땐 등산을 하거나 힘든 운동을 하면서 먹으라는 게 당뇨인의 현실인 것이다. 하루 종일 지내면서 입에 들어가는 탄수화물과 당분을 절제하기가 생각보다 힘들다. 그래도 우리 집엔 건강의 선봉에 서서 놀라운 카리스마로 집 안을 휘젓는 첫째가 있어서 감히 삿된 음식은 들이질 못한다. 가공 식품과 해로운 첨가물로 범벅인 세상에서 가족들이 건강을 지키며 살도록 첫째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있으니 이런 딸과 함께 사는 게 여간 든든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길게 내다보고 천천히 실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내 성격과 정말 안 맞다.



어젯 밤, 둘째 딸 생일에 비건 흑임자 케익 한 조각으로 축하했다. 조금 먹어 보니 검정 깨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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