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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an 31. 2016

아내는 소중하다.

설이  다가오고 있다.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설이다.


그런데 이번 설에 우리 남편은 그 마음을 거두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아내인 나를 위한 배려인 것이어서 나는 또 그런 남편이 고마워서 글로 쓰지 않을 수 없다.


암환자에게 가장 고비가 되는 시기가 3년째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암 수술 후 체력이 슬슬 돌아오고 자신감이 붙는 때가 바로 삼 년쯤인데 그래서 환자의 본분을 잊고 무리를 하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선배 암환우들의 경험담이다.


나도 삼 년째인 올해부터는 김장을 네 차례나 하면서 무리하는 줄도 모르고 몸을 썼더니 암 진단 후 한 번도 앓지 않던 감기가 찾아와 지금까지 쾌청하지 못하다.


게다가 며칠 전, 대학생인 딸들을 데리고 해외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더니 맙소사!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이 감사할 지경으로 힘든 여행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난, 나보다 한 달 먼저 수술한 회원이 이번 검진에 다른 곳으로 암이 전이된 우울한 소식을 들려주면서 암으로 죽는 것도 무섭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는 것도 너무 힘들어 굳이 살고 싶지도 않다며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어찌나 씩씩하게 생활하는지 건강한 사람보다 더 활발하고 잽싸게 움직이던 이라 그 소식을 들으니 믿기지 않았지만 또다시 방사선과 항암을 시작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남편도 그 얘기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 나는지 설에 장시간 차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내게 무리가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삼 년 정기 검진을 앞둔 이번엔 내려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큰집의 손위 동서도 대장암 초기로 작년에 수술을 하신 터이고, 일을 나보다 잘 하는 며느리가 있어서 우리 가족이 안 내려가도 크게 서운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아니, 안 가는 것이 사실은 형님을 도와드린다는 게 정확한 설명이긴 한데 우리 남편은 고지식한 사람이라 명절에 형님을 뵈러 안 가는 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어서 작년에는 이혼 운운하며 싸우기도 했다.


손위 동서는 몸이 힘들어 우리가 안 왔으면 하는 눈치가 뻔히 보이는데도 남편은 기어이 가겠다고 하여 중간에서 내 입장이 몹시 곤란했던 상황이었는데 남편은 내가 마치 시댁에 가기 싫어서 그런다며 우겨서 나를 울렸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반드시 가야 할 명분도 없어졌는데 남편은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명절이 되면 예민하게 굴어서 우리 집 안방 문엔 남편이 던진 귤 자국이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나는 명절에 왜 이혼율이 높아지는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이번엔 자기가 먼저 결정을 내려주니 내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나는 그 회원 집에 가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보살펴 주기로 했다.


암환자끼리 통하는 동병상련은 가족보다 더 진하고 눈물겹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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