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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Feb 04. 2016

3년의 시간

암환자가 되어 지내온 3년의 변화

식습관처럼 바꾸기 힘든 것도 없는데 마침내 달고 짜고 매운 입맛에서 벗어났다.


나는 신혼부터 입맛이 무척 짠 편인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간이 세게 들어간 음식을 하게 되었고 이런 습관은 결혼 생활 내내 이어졌다.


또 분가를 하고는 맞벌이를 하면서 간편한 외식을 선호하다 보니 음식점의 강렬한 맛에 길들여져 심심하고 담백한 음식엔 별로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요즘 같은 계절엔 톳나물을 살짝 데쳐 두부를 으깨 간을 약간 해서 먹는데 두부의 고소한 맛과 톳의 씹히는 맛이 아주 맛있다.


이것은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이지만 나는 먹지 않던 것이라서 자주 해주지 않았는데 이젠 내가 더 잘 먹는다.


내가 위암에 걸린 후에도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하지만 달거나 차갑거나 자극이 강한 음식이 들어가면 위가 없는 까닭에 창자가 바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음식들 멀리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면으로 된 음식도 씹히지 않기 때문에 잘 먹질 못하였다.


방부제나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은 나의 창자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먹고 난 잠시 뒤엔 기분 나쁜 느낌이 바로 오기 때문에 역시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나 편의점에 가도 내가 먹을 간식을 고르는 일은 결혼할 남편감을 고르는 일만큼이나  심사숙고해야 하지만 좋은 남자를 만나기가 힘들듯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간식을 고르기란 무척 어렵다.


결정적으로 내 몸의 변화를 느낀 건  지난여름, 속초의 어느 유명한 생선조림 집에서 양념으로 범벅된 생선살을 서너 점 먹었을 때였다.


갑자기 식도가 꽉 막히는 느낌이 들더니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신선도가 떨어진 생선에 양념으로 떡칠을 해놔서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났는데 그동안 정갈한 음식으로 길들여진 내 몸이 더 이상 그런 음식을 받아들이질 못했다.


나의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입맛을 바꾸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삼 년을 살고 보니 남들이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질 낮은 음식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암환자인 주제에 건강한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어이없는 일인 줄은 나도 안다. (너나 계속 잘 하렴!)


심지어 우리 집 아이들조차 내가 차려주는 채식 위주의 건강한 집밥보다는 나가서  사 먹는 음식에 더 환호하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치킨이며 피자도 곧잘 시켜서 먹는다.  


위장이 튼튼하고 비위가 좋은 바에야 당장 입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가 그들에겐 있겠지만 위를 도려낸 나는 차가운 주스도, 달콤한 머핀도, 맵고 얼큰한 찌개도 눈으로만 흡입할 뿐이다.


그래도 다시 바꾸라면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여러분의 오늘 점심은 순한 걸로 드시는 건 어떠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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