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나 얼갈이, 상추는 집 안 텃밭에 심고 물을 자주 주어야 질기지 않고 연한 맛이 난다. 작년에는 옆밭에 고구마 모종을 드문드문 심고 그 사이에 열무 씨를 뿌렸다. 거름도 없는 땅에 씨를 뿌리고 물을 자주 주지 않으니 열무는 자라지 못해 꽃을 피우며 열무 꽃밭으로 변했다. 별 수 없이 마트의 열무를 사서 김치를 담가먹어야 했다.
올해는 마당 아래에 있는 다섯 개의 틀밭에다 차례대로 얼갈이, 열무, 모둠 상추, 로메인을 심고 완두콩을 심었다. 자주 들여다보며 풀을 뽑고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니 며칠 만에 쑥쑥 자라 솎아 주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봄이 되면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 왔다. 어린 열무와 얼갈이를 솎아 겉절이(경상도 말로 쪼래기)를 해 먹으면 풋풋한 풀 맛에 혀가 깨금을 뛰며 춤춘다. 상추는 여리디 여린 이파리를 솎아 조심스럽게 씻어 한 주먹 쌈 싸 먹으면 눈을 부릅뜨게 되지만 입은 즐거워서 웃는다.
남편과 나는 테크 위의 평상에다 양은 밥상을 놓고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일하는 사이에는 평상에서 차를 마시고 밤에는 맥주를 먹기도 했다. 벌레가 없고 선선한 봄밤은 별로 낭만적이지 않은 사이라도 어쩐지 분위기가 싱그러워진다. 라일락과 인동덩굴이 옆에 있어서 향기로운데 큰 꽃으아리는 커다란 꽃잎을 하얗게 피우며 봄밤의 낭만을 부추긴다.
주말 동안 남편은 울창해진 화살나무를 아래위로 가지를 쳐서 정돈하고 나는 옆밭에서 쑥을 잘라 삶아 씻는다고 정신없이 바쁘다. 봄에는 시골에 눌러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뜨거운 낮에만 잠깐 쉬고 하루종일 마당일을 한다고 분주하다.
몇 년 동안 내버려 뒀던 잔디 마당에 모래를 사다가 뿌려주었다. 잔디가 패인 곳에 이끼가 끼어 군데군데 뿌려도 두 포대로는 부족해서 더 사다가 채워야 한다. 시골집은 일을 찾아서 하면 끝이 없이 바쁘다. 오이 지지대도 세워야 하는데 할 시간이 없어서 그건 다음 주말에 하기로 했다.
옥수수 씨앗을 시차를 두고 다시 심었다. 토종 씨앗을 구하면 해마다 모종을 사지 않아도 종자로 늘 쓸 수 있는데 오이나 옥수수, 땅콩, 호박은 모종을 사지 않는다. 작년 농사지은 것을 씨를 받아 말려 두었다가 해마다 심으면 싹이 잘 올라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딸을 위해 수세미를 세 개 심었다. 재작년에 수세미 씨앗을 받아두었는데 냉동 보관을 안 해서 그런지 발아가 되지 않아 천연수세미를 쓰지 못했다. 딸이 꼭 그걸로 설거지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한살림에서 마른 수세미를 하나 사주긴 했는데 오백 원 하는 모종 세 개만 사면 평생 설거지 할 수 있는 수세미가 나오니 안 심을 수 없다. 뒷마당의 석축 앞에다 호박 모종을 심고 그 옆에 수세미를 심었다.
줄을 타고 올라가라고 석축에는 철사로 유인줄을 걸고 나뭇가지를 걸쳐 놓았다. 따뜻한 석축에서 해를 받으며 줄을 타고 벽을 올라가면 수세미나 호박이 왕성하게 자랄 것이다. 이 정도의 작업은 남편 손을 빌리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다.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뿌려 고랑을 가지런히 하는 데는 남편의 힘이 필요해서 그런 날은 밥상과 새참이 풍성해진다.
몸을 써야 하는 노동이 있고 해 놓으면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마당일은 재미있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때가 되면 평상에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