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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07. 2016

부부싸움

우리 부부는 가끔, 아주 가끔 싸운다.


어떤 일에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언성을 높이며 자기주장을 내세우지만 결국 서로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대판 싸우고 나면 감정의 찌꺼기들이 걸러지는 것 같아 뒤처리만 잘 하면 싸움도 필요하다.


황토집을 짓기로 했지만 나 혼자의 결정이었는데 검진 결과가 나온 직후 남편이 "나중에 말하려는 게 뭐였는데?"라고 먼저 물었다.


그래서 이만저만 하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주말을 양평집에서 함께 보낸 뒤에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결국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남편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당신 그 황토집을 꼭 지어야겠어? 나는 당신이 조급하게 구는 것 같아서 걱정이 돼서 그래. 병 걸린 것도 당신의 급한 성격이 한 몫하는데 이제는 반대로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이 남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밟아버렸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속사포같이 쏘았다.


"당신은 집 어질러진 것도 못 보는 사람이고 사온 반찬도 안 먹는 사람이잖아. 내가 직장 다니면서 그 모든 일을 다 하려면 남보다 2배속으로 뛰니까 가능했는데 이제 와서 나의 급한 성격을 탓하면 안 되지."


남편은 내가 집 짓느라 스트레스 받을까 봐 생각해서 한 소리라는데 자기에게 덤터기가 씌워지니 그것만 억울한지 차에서 내릴 때쯤엔 펄펄 뛰었다.


내가 공원을 돌고 오겠다니까 "아줌마! 짐은 올려두고 가야지. 엉?" 이러면서 꽥 소리를 지른다.


짐을 집에 가져다 놓고 현미수 한 팩을 챙겨 다시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남편도 모르는 내 아픈 마음이 서러워서였다.


정상인이 생각하는 방식과 암환자의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나도 남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여유가 있을 때 차근차근 지으면 좋은 거야 누가 모르나?


하지만 나는 내 집에서 눕고 싶은 열망이 목 끝까지 찼고 이젠 실행에 옮기려는데 남편은 매번 내게 걸림돌 역할을 자청하니 남편은 딱 남의 편인가 싶었다.


나는 생활비를 아끼고 가끔 들어오는 가욋돈을 몇 년 동안 꼬박꼬박 모아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여유 자금을 만들어뒀다.


나의 오랜 열망인 줄 모르는 남편은 말리는 일만이 능사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나는 괘씸하고 야속했다.


공원을 하염없이 걸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딸아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아빠가 한숨을 푹푹 쉬더니 엄마가 돌아오면 문자 하라면서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러자 그동안 쓴 글을 남편에게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내가 짓고 싶은 시골집이라는 글을 남편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얼마나 원하는 일인지, 조급하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걸 남편에게 알리고 싶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남편은 한참이나 있다가 술이 취해서 들어왔다.


남자들은 속이 상하면 술을 마시면 되니까 참 편리도 하겠다.


나는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나니 속이 무척 편안해졌다.


'그래, 안 아프니까 지지고 볶으며 싸우기도 하는 거지. 싸울 수 있게 해 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야!"


술 취한 남편은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들고 현관에서 벌러덩 넘어지더니 딸들에게 어서 와서 일으키라고 주사를 부린다.


내 글을 읽고 나서 마음이 변했는지 남편은 "당신 마음대로 좋으실 대로 하세요."라며 화해를 청한다.


그러니까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왜 시작하며 잠자는 마누라의 코털을 건드리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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