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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09. 2016

완경의 의미

오늘 딸과 완경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딸이기에, 엄마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딸이 있어서 행복하고 나를 배려해줘서 감격스러운데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기만 했던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었던 것이 의외로 고맙고 기뻤다.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어제저녁 뉴스에 딸과 내가 인터뷰했던 내용이 방송에 나왔다.


꺅!


딸과 앨범을 뒤적이며 대화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기에 요구대로 응했는데 이십 년 전의 내 사진을 그렇게 오랫동안 비출 줄이야~


아무리 암 카페 회원들이 리즈 시절에도 굴욕이 없다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진한 입술을 한 내 모습에 나조차도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더구나 옆모습을 찍은 화면을 보니 얼굴이 중력에 충실하게 반응한 모습에 좌절했다.


날마다 거울이란 걸 보기는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싶은 얼굴은 젊은 날의 탱탱하고 화사한 모습이었던가 보다.


'저 늙수그레한 중년 여인은 누구인가? 저 여인이 나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면을 응시했는데 함께 인터뷰했던 첫째는 또 저대로 실망했는지 양악수술이 해결책이라며 잔뜩 어깨가 처져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


딸에게 즐거운 이벤트가 될 것 같아서 지상파 뉴스임에도 과감하게 응했는데 우리 집의 후폭풍은 예상보다 거세다.


아마도 여자의 욕심은 제2롯데 건물인 123층의 꼭대기보다 높은가 보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주변의 지인들이 마구 연락을 해올 거라더니 오히려 내가 뉴스를 링크해서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 보냈다.


놀란 건 방송이 끝나자 제일 먼저 목사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심방 다녀왔다가 들어오는 길에 뉴스를 봤다면서 축복의 말씀을 보내주셨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큰 교회의 담임 목사시니 여간 바쁘신 분이 아닌데도 수술 전후로 두 번이나 병원에 와주시고 이럴 때도 기민하게 연락을 주시니 무척 고맙고 기뻤다.


암에 걸린 후 내 생활은 이렇게나 바뀌어 직장과 집을 오가는 시계추 같은 삶에서 이젠 방송에까지 나오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으니 참 사람 팔자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고 예의까지 깍듯했던 안서현 기자의 검색에 걸린, 카페 글을 여기에 덧붙인다.





첫째 딸이 사업 아이템을 정했다.

그것은 바로 초경 축하 패키지 판매이다.

초경을 맞이한 이에게 종류대로 다양한 생리대와 축하 소품 등을 넣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것인데 보통 딸이 초경을 하면 엄마가 사준 생리대를 선택의 기회 없이 쓰게 되고, 또한 부모 입장에서는 축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요구를 반영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한다.

학교 수업의 한 형태로 교수로부터 아이디어가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나의 의견을 묻기에 "발상은 좋은데 일생에 한번뿐이니 사업을 확장하기는 어렵겠는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럴 줄 알고 다음 아이템도 있단다.

생리 주기에 맞춰서 생리대를 배송해주는 연계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아이쿠!

집에만 들어오면 하는 일 없이 나에게 민폐만 끼치는 첫째인데 다른 일은 신통하게도 머리가 잘 돌아가고 의욕이 넘치는 게 신기하다.

부모의 인터뷰를 녹음해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서 나에게 대신 해달라며 약속 시간이 임박해서 나가야 하는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나는 마치 중학생 딸을 둔 엄마인 양 떠듬거리며 "아이가 초경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축하를 해 주어야 할지 쑥스럽고 어색하네요."라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내게 자신의 초경 때는 축하를 안 해주었다고 때늦은 원망을 했다.

"무슨 소리야? 엄마는 평소에 딸이 초경을 맞이하면 케잌과 꽃으로 축하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주었을 거야."

"엄마! 초경을 한 내가 기억에 없는데 뭘 해줬다고 그래? 그냥 생리대 사용법과 뒤처리만 가르쳐주고 끝이었거든?"

"아니야. 기다려 봐. 아마 내 블로그에 기록한 게 남아있을 거야. 네가 몇 년도에 초경을 했지?"

나는 십 년 넘게 일기 대신 써오던 블로그를 아무리 검색해도 첫아이의 초경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그러느라 결국 약속 시간은 늦고 말았고 딸아이는 자기 말이 맞다면서 지금이라도 케이크를 사준다는 약속을 하라고 해서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먹는 걸로 다 쓰는 둘째가 대신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초를 꽂고 축하 노래를 부르려는데 첫째가 엄마의 완경을 축하한다면서 "사랑하는 엄마의~ 완경 축하합니다~"라고 노래를 불렀다.

마침 케이크도 주제에 맞게 시뻘건 시럽이 위에 가득 발라지고 빨간 체리로 장식되어 있었다.

사느라 바빠서 첫째 딸의 초경 축하 파티도 못해줬는데 이 딸이 자라서 항암으로 당겨진 나의 완경을 축하해주다니!

남편과 둘째는 그저 "케이크가 맛있네!" 이래가면서 달달한 케이크에 코를 박은 채 정신없이 떠먹고 있었다.

며칠 후, 동네 이불집에서 창고대개방을 하기에 첫째가 덮을 양모이불을 반값 할인으로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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