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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10. 2016

마지막 제사

4월 초에 큰집의 제사가 있다.


일 년에 한번 지내는 제사인데 이번 제사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어젯밤, 예고도 없이 지방에서 올라오신 시숙이 손위 시누이 집에서 주무셔서 오늘 아침은 나도 반찬 두 가지를 해서 버스 한 정거장 건너에 사는 시누이 집으로 갔다.


급하게 준비해간 달걀말이와 어묵볶음이 아니더라도 상다리는 이미 휘어지게 차려져 있고 서로 얘기해가즐겁게 아침 식사를 했다.


팔순이 가까워오는 시숙이지만 워낙 멋쟁이인지라 줄무늬 스웨터에 양말까지 발랄한 줄무늬로 맞춰 신고 길거리에서 샀다는 갈색 구두는 앞코가 날렵하고 없는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반짝였다.  


남편은 회의 장소까지 시숙을 모셔다 드리러 나가고 나는 남은 설거지를 하며 커피까지 마시고 나왔다.


그제야 시누이는 간밤에 세 남매가 모였을 때 시숙이 이번 봄의 제사를 끝으로 앞으로 제사를 없앨 것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아직 생존해계신 숙부님과 사촌들이 십여 명이나 오는데 혹시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더러 제사를 가져가라고 할 것이라며 단호하더라면서 시누이는 잠시 섬찟했다고 한다.


아마도 손위 동서가 나처럼 암에 걸리자 더 이상 힘든 제사와 명절을 치르는 것이 미안하고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주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인 것 같다.


게다가 시누이는 제삿날이 마침 외손자 돌과 겹치는 바람에 마지막 제사도 못 가게 되었다며 더욱 심란해했다.


우리 시댁은 함안 조씨로 제사를 중요시하고 수많은 사촌들과 돈독한 형제애를 과시하던 집안이다.


시누이는 이제 사촌끼리 볼 일도 없고 안 보고 지내는 것 아니냐며 그동안 지나치게 음식을 많이 하고 정성을 쏟던 손윗동서를 탓했다.


작년에 앞으로는 제사와 명절마다 큰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으로 형제간에 어렵사리 합의를 보았는데 큰집 가는 문제로 남편과 더 이상 다투지 않아도 되니 며느리인 나로서는 시숙의 결정을 환영한다.


그동안 나이 든 형수의 오랜 음식 맛을 못 잊어서 형 집에 못가 안달이었는데 남편의 생각은 어떤지 있다가 퇴근하면 물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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