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리게 되면 인생이 재밌게 느껴진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 암환자들도 한결같이 하는 얘기니 믿을 만 하다.
심지어 <나는 암이 고맙다>라는 책도 있다. (다른 암환자들의 기분을 고려해서 속편은 제목을 바꿨다.)
처음에 의사로부터 "당신은 암에 걸린 것 같다."라는 진단을 들었을 때는 누가 나의 심장을 콱 움켜쥐는 듯한 고통과 공포를 느꼈다.
경황없이 수술대에 오르고 항암을 하면서부터 비로소 암환자라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때부터 세상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권태롭던 일상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무 끝에 달려 있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나에게 파르르 손짓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몸으로 느끼는 일상도 새롭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소화하고 배출하는 과정이 아무 문제없이 이루어질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내 다리로 걸어 다니고 나서 저녁엔 통증 없이 잠자리에 들 때면 축복의 노래가 조용히 가슴속에서 울린다.
그 뿐인가 냉랭하던 부부 사이도 뜨거운 애정으로 넘치게 된다.
남편의 "내가 고생을 시켜 당신이 암에 걸린 것 같다."라는 말에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봄눈 녹듯 사라져 버렸고 수술 후 한동안 기운이 없어 남편을 지팡이 삼아 팔짱 끼고 다녔더니 이웃들이 사이좋은 부부라고 칭송했다.
나는 이십여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토록 소원하던 전업주부가 되어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을 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눈만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동동거리며 집안일을 해야 했던 쳇바퀴에서 드디어 내려서게 되었던 것이다.
남들은 하나같이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뒀냐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꿈을 이루었다.
책 읽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십 대부터 글 쓰기에 취미가 있어서 꾸준히 일기를 쓰고 블로그에 기록하다가 암 카페에 나의 가족 이야기부터 올리기 시작했다.
원래 개그 본능이 꿈틀대는 나였기에 글에도 웃음 포인트가 종종 있어서 주책스런 사생활을 공개하니 많은 회원들이 즐거워하며 덧글을 달아주는 통에 나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2년 동안 꾸준히 썼더니 이젠 글쓰기에 힘이 붙어서 이렇게 잘나가고 똑똑한 사람들이 주로 쓰는 브런치에 작가 이름으로 떡하니 올려놓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암에 걸리고 난 다음에 느끼게 된, 그동안 몰랐던 나 자신과 인생의 소중함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미워서 견딜 수 없던 나를 비로소 사랑하게 되고 이까짓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된 고마운 암
그렇다고 일상에 지친 사람에게 "암에 한 번 걸려 봐. 인생이 달라져!"라고 권하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