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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19. 2015

주부의 연봉 협상

매달 남편에게서 받는 돈으로 생활하기에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계부에 적힌 금액은 수입과 지출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주부도 미래를 위한 저축이랄지 여유자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꿈을  먹고사는 존재이지 않은가.


남편에게서 받는 돈은 꿈 값까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동안 남편의 동향을 살폈다.


연봉 인상을 꺼내기 가장 좋은 시점을 노리는 것이었는데 마침내 그날은 왔다.


바로 갈치조림을 하는 날이었다.


친정 엄마에게서 김장을 도와주고 얻어 온 양념으로 연봉협상에 지장이 없게끔 정성을 다해 끓여냈다.


무를 아래 위로 넉넉히 넣어 뭉근히 끓인 갈치조림의 맛을 보는 순간, 승리를 예감했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가 끝나고 마침 아이들도 모두 늦어 조용한 시간에,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 옆으로 살며시 궁둥이를 들이 밀었다.


물론 입가엔 최대한 매력적인 미소를 띠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보! 이제 연말인데 내가 받을 내년의 연봉 협상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 지금 받는 돈이 적어서 그래?"


"그건 아닌데 새로 협상 조건이 생겨서 그래."


"뭔데?"


"내년 봄에 양평에 집을 지으려고 했잖아. 그런데 돈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도 하나는 졸업을 시켜 놓고 해야 내가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아. 당신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래서?"


"그래서 말인데 집을 좀 더 있다가 짓는 대신에 지금 있는 셋집의 월세를 당신이 한꺼번에 내 통장에 넣어줬으면 해. 그리고 생활비도 더 올려주고."


"허허 참. 여행도 가야지, 월세를 한꺼번에 달라면 그것도 목돈인데 생활비까지 올려 달라고?"


"싫으면 집 짓든가"


"이 사람이 지금 협박하는 거야?"


얘기 돌아가는 모양새가 생활비까지 인상하기는 틀려먹은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두 가지 중 하나만 달성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결과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나의 요양을 위해서 기왕이면 단칸이라도 내 집이 좋겠지만 지금 지내고 있는 셋집도 나쁘진 않다.


갈치조림이 이끌어낸 나의 연봉 액수는 당연히 비밀일 것 같지만 이제 내겐 비밀이라곤 없다.


암 카페에 첫사랑부터 중간에 사귄 남자까지 탈탈 털어 고백한 처지에  그까짓 연봉이 뭐라고 비밀이겠는가.


직장 생활 이십삼 년 경력에 받았던 내 연봉의 딱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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