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Apr 21. 2016

박주가리 꽃을 아시나요?

지난여름, 양평의 세든 집에서 밭으로 가는 길에 덩굴이 하나 올라온 것이 있었다.


하얀 털로 보송보송하게 덮인 조그만 꽃이 달렸는데 무심코 지나다가 달콤한 향기가 나서 두리번거리니 바로 그 꽃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밭에 갈 때마다 코 끝을 유혹하는 달짝지근한 향에 반해서 장화 신고 농사지으러 오가는 길이 훨씬 즐거워졌다.


가을이 되자 열매가 달리고 그 안에서 하얀 날개를 단 씨앗이 벌어진 틈으로 보였다.


내 생전에 꽃씨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내년에도 달짝한 이 향을 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씨앗을 종이에 싸놨다가 올봄에 집 앞 화단 서너 곳에 꽃씨를 심었다.


덩굴식물이라 기둥을 함께 세워두기도 했는데 문제는 이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겨울쯤 티브이에서 이 꽃이 소개되어 눈이 번쩍 뜨였는데 메모를 하지 않았더니 바로 잊어버렸고 머릿속엔 네 글자인 것만 기억에 남았다.


집에 있는 작은 야생화 도감을 뒤져도 안 나오고 '여름에 피는 꽃'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아서 궁금증은 더해졌다.


야생화를 많이 심어 놓은 양평의 공방에도 이 씨앗을 나누어 드렸지만 이름은 모른 채이니 참 답답했다.


그러다가 어제 모처럼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원래는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라는 책을 빌리러 갔는데 대출 가능이라는 컴퓨터의 안내와는 달리 책장에는 그 번호만 쏙 빠져 있어서 허탈한 나는 반대편 책장의 수필집 코너를 훑다가 이효재의 책 중 하나를 꺼내 펼쳐보았다.


아! 그런데 그 책에 이 꽃이 나와있지 않은가?


이름하여 박주가리였는데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름 박. 주. 가. 리


꽃은 솜털이 보송하고 향은 더 달콤한데 왜 이름은 우악스러운 박주가리인지..


하지만 박주가리라는 이름을 알고 나니 내겐 더욱 소중한 꽃이 되었다.


꽃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야생화 하나에 이렇듯 궁금하게 되다니 자연은 앞만 보고 달리던 나를 땅을 보고 꽃을 보게 만들었다.


박주가리 꽃


올여름에도 너를 꼭 만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지지리도 못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