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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02. 2016

관음죽에 꽃이 피면?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올 때 친정아버지가 조그마한 관음죽 묘목을 가져오셨는데 십이 년 만에 꽃이 폈다.


그런데 꽃 모양이 좀 이상하다.


예쁜 것도 아니고 향도 없는 것이 처음엔 화분에 이게 뭔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관음죽에 꽃이 핀 줄 알았다.


아버지가 주신 것이라 제일 먼저 친정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잠시 뒤에 전화로 하시는 말씀이 관음죽은 꽃이 피면 죽는다면서 나무가 수명이 다 되어서 그런다고 하셨다.


 피었다고 좋아하다가 이게 웬 말인가 싶어서 일단 엄마의 전화를 끊고 검색으로 바로 들어갔다.


하지만 엄마가 말씀하신 내용은 전혀 없고 행운목에 꽃이 피면 좋듯이 관음죽도 꽃 보기 힘든 식물이라 꽃이 피면 좋은 일이라는 내용뿐이었다.


그제야 안심을 하고 나니 몇 년 전에 이웃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이 났다.


맏며느리인 그 이웃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게 집에서 기르던 관음죽에 꽃이 핀 다음의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의 돌잔치에서 사회자가 손님들에게 아들을 낳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을 하고, 그 사연을 알고 있는 다른 이웃이 답을 맞혀서 상품을 탔다고 좋아했다.


엊그제 시누이에게도 관음죽 얘기를 하니 아마 삼 년 안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십수 년 전에 자신의 아들이 한의대에 합격한 것도 집에서 키우던 관음죽에 꽃이 핀 다음이라고 말했다.


꼭 좋은 일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물을 주고 관리를 해왔던 집안의 화초가 꽃을 피운 것만 해도 나의 수고를 충분히 보답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관음죽에 꽃 핀 것을 써먹을 일이 생겼다.


남편으로부터 한 달에 한번 생활비를 통장으로 이체받는데 날짜를 바꾸는 과정에서 남편의 실수로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백만 원이나 더 이체가 된 것이다.


나는 평소 돈에 관해서는 부부 간에도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 경우에는 쓱 하는 수밖에 없는데 지난달에 이어 또 쓱 하려니 좀 그래서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집으로 들어오자 나는 두부부침을 노릇노릇 하해서 저녁을 차려주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여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요. 우리 집에 관음죽 꽃이 폈잖아.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지금 우리 집에 과제는 당신이 공사를 큰 건으로 따는 거잖아. 아마 좀 있으면 공사를 따게 될 거야. 그래서 그때 나에게 보너스를 주려고 할 텐데 미리 받은 걸로 할 테니 그리 알고 편안하게 저녁 드세요."


남편은 입 안에 든 밥알을 씹어 삼키는 수 밖에


관음죽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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