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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09. 2016

아들 키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이번 연휴의 마지막은 남편 친구인 부부 두 쌍을 시골집으로 초대해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 보냈다.


나는 집에 사람 오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시장을 봐오고 음식 준비하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또 내 눈치를 보느라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화단에 심어 놓은 쌈채소를 조금 자라기가 무섭게 뜯어먹어버려 손님에게 드릴 채소가 부족하였다.


이럴 땐 이웃에게 가서 얻어오면 되는 게 시골 생활의 좋은 점이다.


비닐하우스 안에 가득 심어놓은 쌈채소를 얼마든지 뜯어가라는 말에 겨자채, 로메인, 상추, 치커리, 쑥갓 등을 한 봉지 담아와서 지하수에 말갛게 씻고 식초물에 잠시 담갔다 건졌다.


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삭거리고 싱싱한 쌈채소를 한 소쿠리 씻어놔도 손님맞이는 든든하다.


이윽고 남편 친구들이 차례로 도착하여 저녁상을 가득 차려놓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양주와 솔순으로 담근 술과 맥주가 오가며 흥겨운 자리가 이어졌는데 화제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의 시골 생활로 모아졌다.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인 권 소장은 술이 꽤 오르는지 붉어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는 제수 씨가 집안일을 다 해도 시골에 와서는 네가 밥하고 청소하는 걸 해라. 제수 씨가 아픈 사람 아니냐. 주말에는 어차피 쉬러 왔으니까 공주처럼 아무것도 시키지 말고 네가 밥을 해서 차려 드려 야지."


일 년 넘는 시골 생활에서 남편이 설거지나마 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내 지인들이 와서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남편을 설거지라도 하라며 등 떠밀다시피 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나는 손이 느리고 집안일을 어려워하는 남편에게 시키기가 답답해서 싫다.


이런 형편인데 안타깝게도 이미 술이 취한 권 소장은 여러 차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남편은 난처한 지 멋쩍은 웃음만 웃고는 나를 보고 구원의 눈빛을 보냈으나 당연히 나는 외면했다.


나중에는 보다 못한 내가 그만하시라고 했으나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약간 상한 듯했다.


나는 속으로 '표정을 보아하니 나중에 또 내 탓을 하겠구먼.'이렇게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왜 자신이 곤경에 처할 때 거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냐고 시비를 걸어왔다.    


요즘엔 설거지라도 한다고 내가 한 마디 거들었으면 얘기가 끝나는 건데 왜 가만히 있는지 그게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며 안 그래도 끓는점이 낮은 나의 화를 돋운다.


아니, 실수는  술 취한 자기 친구가 한 건데 원망은 왜 내게로 돌아오냐고!


남편이 결혼 생활 동안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고 나에게만 의존했던 것에 불만이 있었지만 내가 표현을 안 했을 뿐인데 남편은 요 며칠 동안 설거지를 한 것이 그리도 대견한 모양이었다.


싸우자고 들면 얼마든지 반박할 여지가 있었지만 나는 참았다.


예전 같으면 앞뒤 구분 없이 내 기분대로 화를 내었겠지만 이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집에 가면 어버이날이라고 딸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싸우고 들어갈 수도 없고, 내가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도 함께 고려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화를 안 내자 남편은 자신이 막내가 되어 받기만 하고 자랐고, 맞벌이하는 아내를 만나 그동안 편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자기 친구들이 시기를 할 수도 있다는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나는 집안일을 잘 못하지만 너그럽고 부드러운 남편이 좋다고 운전하는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그러자 남편은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어린애같이 웃었다.


남자들이란!


집으로 들어오니 딸들이 케이크를 사놓고 봉투에 구멍을 내어 신사임당과 세종대왕 얼굴을 빼꼼히 내놓았다.


나는 오만 원인데 남편은 만원인가 싶은 순간, 봉투 속엔 세종대왕 뒤에 신사임당을 따로 넣어 주는 딸들의 센스에 감탄했다.


딸들이 봉투에 쓴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니 내 입에서는 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아들 키우기가 제일 힘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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