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May 23. 2016

내가 농사짓는 법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도시에서는 아침이 와도 큰 감흥이 없지만 시골에서는 신선한 공기와 이슬이 축축이 내린 땅 그리고 천지에 가득한 청명한 기운으로 짧지만 강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어디서 주워듣기로는 아침저녁엔 우주만물의 음양이 교차하는 시간이라서 신비롭고 좋은 느낌을 준다고 하는데 시골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좋기만 한 시간이 아침과 저녁이다.


하지만 가장 바쁘게 보내야 할 시간도 그 때여서 해질 무렵 멍하니 앉아 있기 위해 시골에 왔지만 나는 그럴 새가 없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작업복과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까지 신고 밭에 가는 일이다.


해가 떠서 본격적으로 덥기 전에 잡초를 매고 물을 주고 작물들을 돌보기 위함이다.


체력이 약한 남편과 나는 밭 전체를 고랑으로 만들지 못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밭을 만들어 작물을 심었다.  


동네 밭에는 기다란 고랑의 줄에 쫙 맞춰서 옥수수나 감자 이파리가 힘차게 너풀거려도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씩 심어놓고 잡초가 무서워서 검은 부직포로 여기저기 덮어놓은 우리 밭은 엉성하고 빈약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 같은 동네 밭에 비해 우리 밭의 작물은 자라는 것도 시원치 않아서 애가 탄다.


아침저녁으로 지하수의 물을 호스로 끌어다 물을 주면 애타는 주인만큼이나 목이 말랐을 작물들이 물방울을 맞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흐뭇한 순간이다.


오이 다섯 개, 가지 다섯 개, 방울토마토 다섯 개, 고추 다섯 개, 매운 고추 세 개, 파프리카 세 개, 양배추 열 개, 부추, 땅콩, 호랑이콩, 대파, 옥수수 이것이 올여름을 기대하며 심은 나의 야심 찬 작물들이다.



쌈채소는 밭에 심지 않고 집 앞의 조그만 화단에 심었는데 손님이 오면 양이 부족해서 늘 이웃의 밭에 가서 신세를 져야 한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농사를 지어보려고 해도 모종을 심을 땐 언제나 허둥지둥해서 올해도 옥수수 종자를 한 두 알씩 떨어뜨려 심어야 하는데 한 군데 모아서 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또 잘라먹으려면 모아서 심어야 손쉬운 부추는 내가 미처 일러주기 전에 남편이 듬성듬성 떼어서 심어놓았다.  


주말에만 와서 지내다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도 가냘픈 모종을 밭에다 심어 놓고 걱정이 되어 어린 아기와 같은 상태인 모종에게 미안해서 혼났다. (결국 오이 모종은 세 개가 죽고 말았다.)


작년에는 고라니가 콩잎을 모조리 뜯어먹는 바람에 콩 농사를 망쳤기에 올해는 울타리부터 둘러서 고라니보다 우리가 콩을 더 먹겠다고 기세 등등하였다.


우리 딴에는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지어보려는데 시골에서 자란 지인들이 놀러 와서 우리가 하는 꼴을 보면 그저 비웃기 좋은 모양이다.


손바닥만 한 밭농사에 뭐 할 게 있다고 눈만 뜨면 장화까지 신고 그냥 손으로 대충 뽑아도 되는 잡초를 헛호미질까지 해가면서 하느냐고 코웃음을 친다.    


호리호리한 남편과 이제는 날씬해진 나를 닮아서 우리 집 작물들도 풍성하지 않다고 하니 우리 부부는 웃을 수밖에 없다.


농사의 지혜는 해가 갈수록 쌓일 테니 내년엔 좀 더 잘 짓기를 기대하며 이제 잡초와 본격적인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작은 집짓기 - 견적이 나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