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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31. 2016

캘리그라피 수업을 듣다.

남편은 두 차례에 걸쳐 시공을 맡은 소장과 미팅을 가졌다.


꼼꼼하고 치밀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남편은 자신이 납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정이 느리지만 나처럼 실수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 편이다.


남편이 카페 겸 공방에서 오랜 시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의논하는 동안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자 공방 안주인인 손 선생님은 자신이 하는 캘리 수업에 와서 앉아 있으라며 내게 종이와 연필을 쥐어 주셨다.


얼떨결에 수강생 두 명과 인사를 하고 손 선생님의 옆 자리에 앉아 캘리 수업을 함께 했는데 마침 그 수업이 첫 시간이어서 나는 기초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A4용지에 연필로 가로와 세로 그리고 사선으로 직선을 그어보는 것이 첫 과정이었다.


선생님이 연습하셨던 파지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캘그라피 쪽으론 꽤 유명한 분인 손 선생님의 필력을 확인하고는 나는 수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또한 남녀 두 분의 수강생이 어찌나 재미있는 분들인지 두 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얘기를 나누며 수업을 함께 했다.


나와 동갑인 여자 수강생은 디자인 회사 사장으로 광고주들이 요즘 캘리를 원하기 때문에 외주를 주는 대신 자신이 배워서 해보고자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동양화 전공인 그분은 마우스를 하도 자주 클릭하다 보니 손등에 뼈가 부어오를 정도여서 검지를 치켜들고 선을 긋는데도 역시 전공자라 그런지 연습한 선들은 아주 곱고 일정했다.


그 분은 CEO라는 말의 뜻이 ' C발 E게 O너냐?'라는 뜻이라며 첫 대면부터 빵 터지는 말을 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주었다.


남자 수강생도 나와 비슷한 나이로 양평에 주택을 지어놓고 사는 중이라고 하면서 직접 술도 빚고 목공도 하며 만능 재주를 가진 분으로 공대 출신답게 자로 그은 듯이 정확하게 선을 그어대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사범대를 졸업하고 발령 대기하던 청춘일 때 서실에서 붓글씨에 매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종일 먹칠을 해대니 붓끝이 찰떡처럼 쫀득거리며 내가 원하는 획을 그을 수 있어서 그때 무아지경이 이런 맛이로구나 느낄 수 있었다.


서실에서 듣기로 한번 먹향을 맡은 사람은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이야!


선생님이 가는 붓으로도 선을 그어볼 수 있게 해주셔서 먹물에 찍어가며 선을 이리저리 가늘게도 굵게도 그어보는 동안 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던 그 붓 끝의 느낌이 아득한 시간을 가로질러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면서 갑자기 붓글씨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 올랐다.


언젠가는 붓을 다시 쥐고 싶었지만 이젠 붓글씨를 다시 하기엔 서실도 찾기 힘들어졌는데 캘리그라피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붓글씨를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것도 필력이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재밌는 수강생들과 함께 그리고 수업을 시작할 때 교수님이 뽑아주시는 커피까지 마시며 선을 그리노라면 종이에 연필로 직선을 긋는 단순한 과정조차 어찌나 집중이 잘 되는지 깨알 같은 재미가 있었다.


두 시간이 아쉽게 수업이 끝나고 남편에게 앞으로 석 달 과정의 캘리 수업을 듣겠다고 하니 역시나 공대 출신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거 배워서 뭐할 건데?"


꼭 써먹어야 맛인가! 배우는 시간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데 남편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의 무지는 그것 뿐 아니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의 하루하루가 도시에서 보내기엔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일주일 동안 양평에서 머물렀다.


가장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시골에 와 있으니 서울 집에 남아 있는 두 딸과 남편이 걱정되긴 했으나 시골의 재미가 너무 옹골져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출 주부 아니던가!


주말에 온 남편의 손에 이끌려하는 수 없이 서울로 돌아오는데 나 없는 동안 식사며 생활이 불편했을 남편은 애들 핑계를 대며 나의 부재를 책망했다.


내가 없으니 아이들이 먹는 게 부실하고 야식을 먹는다는 둥 집에는 엄마가 있어야 된다는 둥 지루한 훈계를 늘어놓았다.


남편과 말을 섞기 싫어서 나는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야식 먹고 살이 쪘다는 딸들을 보니 내가 있을 때보다 더 날씬해지고 표정이 밝았다.


엄마가 없어도 재밌게 생활하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딸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나니 순전히 남편의 책략이라는 게 드러났다.


다 큰 딸들은 엄마만 재미있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면서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서운한 남편을 위해서는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와서 아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술상을 차리며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자식들도 키워놓으니 힘이 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우리 집엔 갈수록 애가 되어 가는 남편과 어른이 되어가는 두 딸과 놀기만 좋아하는 철부지 엄마가 사는 것 같다.


남자 수강생이 캘리를 배우려는 내게 나중에 집을 지으면 문패를 직접 멋지게 써서 달 수 있다는 힌트를 줬다.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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