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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ug 19. 2016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멋진 공간

설계 단계에서 다락 공간에 대하여 건축가에게 설명은 들었지만 어떤 모양일지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고 예산을 초과하는 공사비 걱정으로 다락을 꾸미지 않겠다고 했다.


돈이 들어가는 것은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당장 필요 없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으로 했는데 공사 중간에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내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높은 지붕으로 인해 다락은 있으나나한 옹색한 공간이 아닌, 복층 구조의 멋들어진 노출 공간이었다.



다락을 만들기로 다시 얘기를 하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건축가의 의도를 무시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점잖은 교수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다.


벽난로도 안 하려고 했지만 요즘은 펠릿 난로가 편리하게 잘 나오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고 해서 겨울보다 환절기 때 한기를 없애는 데는 벽난로 만한 게 없어서 역시 그것도 나중에 설치하기로 했다.


여름엔 손님이 올 경우 에어컨이 없으면 그것도 못할 노릇이라 벽걸이 에어컨도 설치할 예정이다.


물론 집을 다 짓고 난 다음에 돈이 생기면 하나씩 장만할 수밖에 없다.


집을 짓는다고 하면 모두가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비용은 다음과 같다.


대지는 150평이고 실내공간이 20평이며 다락이 6평 정도 된다.


건축비용은 일억 천팔백만 원으로 계약을 했고 다락 공사비용이 추가가 되어 대략 따지면 평당 오백만 원이 드는 셈이다.


여기에 부엌 가구만 따로 사면된다. (이건 다행히 친정엄마가 해주시기로 했다.)


부대 비용으로 설계, 토목설계, 세금, 정화조, 지하수, 조경 등으로 오천 만원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비용은 대략 일억칠천만 원이 들어가지만 조금씩 더 추가되는 비용이 생기게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암환자가 되기 전까진 앞만 보고 살면서 막연한 미래의 행복에 집착했다면 이제는 '뭣이 중헌지' 알게 되어 남편 모르게 가지고 있던 모든 비자금을 탈탈 털어 집을 짓는 데 쏟아붓고 모자라는 건 남편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아이들 둘이나 대학에 다니고 있고 딸들이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잔뜩 움켜쥐고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집을 지으니 이젠 돈이라곤 씨가 말라버렸지만 결혼하면서부터 간절히 원했던 일이고 이젠 더 이상 늦출 수 없게 되고 보니 딸들 인생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암에 걸린 후 일 년 동안 땅을 보러 다니고 양평에 자리 잡고 난 다음에도 이 년 가까이 집 짓는 일을 알아본 뒤에야 결정했는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보는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우리도 처음엔 조립식 주택에서부터 컨테이너를 거쳐 황토집까지 두루 알아보고, 시공업자도 건축회사에서 지인, 동네 목수까지 다 거쳐본 후 우연한 기회에 우리 동네에 있는 건축가를 알게 되어 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기도하며 기다린 끝에 역시 신실한 신앙으로 뭉쳐진 마음 잘 맞는 분을 만나서 자주 함께 식사도 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집을 짓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님은 자신의 작품이기도 한 우리 집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보다 더한 애착을 가지고 감리를 해주고 있으며 작은 것 하나에까지도 꼼꼼하게 신경 써주시는 데다 부인인 손샘은 미대 출신으로 인테리어에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도와주신다.


시공을 맡은 방 소장님은 교수님과 같이 작업한 지 수십 년째이고 노령이지만 치밀한 성격에 책임감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맡아주시며 건축주인 남편은 시공기술사로서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사실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어 얼음물만 열심히 현장에 갖다 나르면 된다.


그러니 시간이 가면서 하나씩 집이 완성되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무척 즐겁고 신나는지 나더러 좋지 않느냐고 오히려 묻는다.


그리고는 공치사도 잊지 않는다.


집을 짓기로 결정했을 때 남편은 무엇보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걱정을 하고 만류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남편이 더 고민을 많이 하고 나는 뒷짐을 진 채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그런 자신을 알아 달라고 은근히 나를 떠보지만 나는 결코 남편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는다.


7월부터 착공에 들어갔으니 이제 시월 초쯤이면 집이 완성될 것이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전원주택이 아닌, 조금은 특색 있고 깔끔한 집을 원하던 남편의 요구대로 지어져 가는 집을 보니 오랜 기다림의 결실인 듯해서 나로서도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비록 통장 잔고는 너덜너덜해졌지만 내 마음이 충족하면 그걸로 만족해야지 이제 와서 어쩔?


그런데 집이 완성될수록 내 마음에 소망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암 투병하면서 정이 담뿍 들었던 암 카페 <아름다운 동행>의 회원들 중에서 시골 생활을 해보고 싶으나 연고가 없어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을 우리 집에 재우면 어떨까 하는 의도가 자꾸만 생긴다.


원래는 뒷마당에 황토방을 짓고 나서 그곳을 빌려줄 생각이었으나 넓고 높은 다락을 보니 그곳도 꽤나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 같고 무엇보다 시골 생활이 적적하니 사람 구경을 하고 싶은 내 욕심이 자꾸만 그런 궁리를 내게 만든다.


더이상 일을 벌이지 말자고 수없이 자신에게 다짐을 하고는 있지만 사람 좋아하고 떠들썩하게 모여 노는 것 좋아하니 사람 모으는 일을 꾸미고 있는 나 자신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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